2012년 3월 16일 금요일

김호곤을 위한 변명 (2004. 8. 23.)

* 이 글은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축구가 끝난 뒤(2004. 8. 23.) 한 인터넷 축구 커뮤니티에 썼던 글입니다. 지난 2011 시즌 K리그 플레이오프에서 '철퇴축구'라는 별명을 얻게 된 것을 시작으로, 올 시즌 초반 4전 전승으로 리그 1위에 오르면서 김호곤 감독의 지도력이 재조명받고 있는 시점에 감회가 깊어 다시 올려봅니다.


김호곤을 위한 변명

ㅡ 김호곤 감독은 실적에 걸맞는 평가를 받을 자격이 있다




"이 장문의 글은 그래서 '김호곤을 위한 변명'이자, '제2, 제3의 김호곤들'을 위한 변명이기도 하다. 김호곤 감독이 이런 비난을 받을진대, 하물며 훗날 '이민성 감독'이나 '김상식 감독'이 나온다면, 그들이 단 한 경기라도 패할 때마다 받는 비난은 오죽이나 하겠는가. 김호곤 감독이 이번 올림픽대표팀 감독 임기중 거둔 성과물은 단언컨대 역대 어느 국내 감독보다도 뛰어난 것이며, 그는 그에 걸맞는 평가를 받을 자격이 있다. 중국이나 이란이 그토록 갖고 싶어해도 갖지 못한 것을 어찌하여 우리는 발로 차고 던져버리기에 바쁜가?" ㅡ 본문 중에서




  보통 패장(敗將)을 변호하는 것은 대단한 용기를 필요로 한다. 전선(戰線) 뒤의 사람들이 패배의 희생양을 찾고 있을때 앞장서서 패장을 변호하는 일은 목숨을 걸어야 할만큼 위험한 일이라는 것을 역사는 보여주고 있다. 그 중 가장 잘 알려진 사례는 아마도 사마천(司馬遷)일 것이다. 흉노에게 패하여 투항한 이릉(李陵)을 홀로 나서 변호하던 사마천은 한(漢) 무제(武帝)의 진노를 사서 궁형(宮刑 : 남자의 고환을 제거하는 형벌)에 처해졌다. 어쩌면, 패장을 변호하다가 목숨을 잃은 숱한 문관(文官)들에 비해 사마천의 경우를 사람들이 더 잘 알고 있는 것은, 그나마 궁형으로 목숨은 부지한 사마천의 예가 오히려 운이 좋은 편에 속하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이 글은 '승장(勝將)' 김호곤 감독을 변호하기 위해서 쓰여졌다. 아니, 승장을 변호하다니!!  승장이라면 당연히 칭찬을 받고 환호성을 들어야 맞지 않은가?  불행히도 축구팬들의 여론은 그렇지 않은것 같다. 올림픽 대표팀 부임 초기부터 김호곤 '감독'이라는 호칭은 고사하고 '김호곤'이라는 본래의 이름 석자를 팬들에게 듣는 것조차 감사해야 할 정도로, '기모곤', '호고니', 심지어는 '호로곤', '무뇌곤' 등으로 불려야 했던 그는, 이제 한국 올림픽축구 사상 최초로 조별 리그를 통과해 8강에 진출한 감독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8강전 한번의 패배로 또다시 팬들의 십자포화에 직면하고 있다.


  그래서, '김호곤을 위한 변명'을 시작하려는 나는, 그가 엄연한 '승장'임에도 불구하고, '패장'을 변호하다가 희생된 저 숱한 문신들의 예를 떠올릴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이 '무뇌곤'이라 부르는 감독을 희생양으로 삼고 있는 무례한 '여론'은, 일면식도 없는 감독을 제 일처럼 나서서 변호하는 한 축구팬을 또다시 희생양으로 삼아 몰아내려 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패장을 변호하다가 희생된 숱한 문신들이 이유없이 패장을 변호하지 않았을터, 하물며 패장도 아니며 56년만에 가장 좋은 결과를 얻어낸 장수는 그에 합당한 평가를 얻을 자격이 있다. 이 글은 그런 너무나도 '당연한' 상식을 환기하기 위함이다.



  김호곤 감독은 과연 '불투명한 선임 과정'에 의해 감독이 되었나?

  김호곤 감독에 대한 부당한 평가는 김호곤 감독의 올림픽대표팀 감독 선임 당시부터의 부정적인 선입관에 기인하는 바가 적지 않다. '안티 김호곤'들이 김호곤 감독 체제 초기에 김호곤 감독을 비난한 근거는 세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 K리그에서 부진한 성적을 거둔 감독이 불투명한 선임 과정을 거쳐 대표팀 감독으로 선정되었다는 주장. 둘째, 브라질과의 A매치 감독 대행 때의 후반전 '교체 쇼', 셋째, 네덜란드 원정 후 공항에서의 '히딩크 그 XX' 막말 파문.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 보면 이상을 근거로 한 김호곤 감독에 대한 비난은 사실 형평을 잃고 있는 것이며 기실 히딩크 감독 시절 스포츠신문들이 보여준 행태를 답습하고 있는 것이기까지 하다. 먼저 김호곤 감독의 대표팀 선정 과정이 과연 '불투명'했는지를 보자. 2002년 11월 김호곤 당시 부산 아이콘스 감독이 올림픽 대표팀 감독으로 선정될 당시, 대한축구협회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팬들의 56%가 국가대표팀 감독과 올림픽 대표팀 감독의 분리를 희망했고, 협회는 이러한 여론을 참고하여 올림픽 대표팀 감독을 먼저 선정하기로 결정했다.


  여기서 생각해야 할것은 과연 대한축구협회가 국가대표팀 감독과 올림픽대표팀 감독을 모두 1급의 외국인 지도자로 쓸만큼 재정이 여유로운가 하는 점이다. 히딩크와 같은 세계 레벨의 명장을 2년간 감독으로 초빙하는 데에는 적어도 4백만불 이상의 돈이 필요하다. 히딩크와 같은 'S 클래스' 명장은 아니더라도 지명도가 있는 A급 외국인 감독을 데려오는 데에도 연간 1백만불은 준비해야 한다. 월봉 2만불을 받던 본프레레 감독과 계약하는 데에도 KFA는 그가 종전에 받던 연봉의 세배인 연간 70만불을 제시해야 했다. 그 이전에 브뤼노 메추, 루이스 펠리페 스콜라리를 어떻게 놓쳤는지는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다. 여러 '핑계'가 따라붙었지만 결국 본질적인 이유는 '돈이 곧 명예'인 프로의 세계에서 KFA가 명장의 가치에 합당한 금액을 제시할 여력이 없었다는 데에 있다.


  그래서, 국가대표팀 감독과 올림픽대표팀 감독 중 한 자리는 국내 지도자를 쓸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KFA는 올림픽대표팀 감독에 국내 지도자를 기용하기로 한 것이다. 올림픽축구가 끝날 때까지 계속된 '안티 김호곤'들의 속모르는 외국인 감독 타령과는 달리, 현실적인 여건은 국내 지도자를 쓸수 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물론 '외국인 지도자 타령' 외에도 당시 K리그 9~10위권으로 쳐진 부산을 이끌던 김호곤 감독이 과연 올림픽 대표팀 감독으로 적임자냐 하는 문제 제기도 있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런데, 김호곤 감독이 적임자가 아니라면, 과연 누가 감독이 되어야 했을까?  2002년 당시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던 감독들을 한번 꼽아보자. 조광래?  '유망주들의 무덤'이라고 불리던 안양의 감독이던 그가 U-23 대표팀에 적합한 인물이었을까?  김호, 이회택?  국가대표팀을 이끌고 월드컵까지 나가본 감독이 '디그레이드(degrade)'되어 올림픽 대표팀을 맡으려고 하겠는가?  더욱이 김호 감독은 당시 KFA 지도부를 불신하여 대표팀에 참여하지 않으려고 한 인물이고, 이회택 감독은 '90 이탈리아 월드컵이 끝난 후 '두번 다시 대표팀은 맡고 싶지 않다'고 엄청난 압박감에 시달렸음을 토로했던 인물이다. 최순호?  서포터즈가 물러나라고 매 경기 현수막을 걸던 그 감독?  최윤겸?  국제대회 경험 하나 없는 그를 클럽에서의 일천한 경력을 보고 일약 U-23 감독으로 뽑아야 했을까? 


  이렇게 한명 한명 꼽아보면 당시 축협은 대단히 좁은 인재 풀(pool)에서 사람을 고를 수 밖에 없음을 알 수 있다. 남은 후보들 중 박성화 감독은 U-19 대표팀에 전력하겠다는 의사를 피력했고, 허정무 전 감독은 그후 기술위원회에 들어가는 과정에서도 막판까지 고사했듯이 당시에도 올림픽대표팀을 맡을 의사가 전혀 없었다. 그렇다면 김호곤 감독 외에 누가 감독으로 선임될 수 있었을까?


  아마도 팬들의 비난을 받지 않고 감독으로 선임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 있다면 그 무렵 막 선수 생활을 끝내고 지도자 수업을 선택한 황선홍 정도였을 것이다. 그나마도 지도자로서의 능력을 인정받아서가 아니라 선수 생활 당시의 후광 때문에. 그러나 데샹처럼 클럽 감독을 맡는 것도 아니고, 30대 초, 중반의 '선수 시절 영웅'을 곧바로 자국 축구협회의 각급 팀에 데려다 쓰는 것은 동구권의 축구 후진국들이나 하는 일이다. 후술하겠지만 국내 감독에 대한 불신과 비난은 이처럼 좁은 인재풀에서 감독을 골라야 하는 어려움을 더욱 심화시킬 뿐이다.



  히딩크 시절 스포츠신문들의 행태를 답습하는 '안티 김호곤'들

  이처럼 김호곤 감독의 선임이 '연줄'에 의해 '불투명하게' 이루어졌다는 것은 근거가 없음을 알 수 있다. 축구판의 연고주의가 그간 많은 부조리를 양산해왔음은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때때로 이 연고주의에 대한 의심은 근거없는 억측을 낳아왔음 또한 부정하기 어렵다. 일례로 '98 프랑스 월드컵 본선에서 차범근 감독이 김도훈을 중용하자 항간에는 '차범근 감독이 학연과 종교 때문에 김도훈을 기용했다'는 소문까지 나돌았다. 그러나 고려대 출신에 기독교 신자인 차범근 감독과는 달리 김도훈은 연세대 출신에 불교 신자다.


  부산아이콘스를 하위권으로 추락시킨 감독이 어떻게 올림픽대표팀 감독으로 '영전'하느냐는 질타도 근거가 불분명하기는 마찬가지다. 물론 최종순위로 드러난 성적이야 전만 못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정작 2001년과 2002년에 부산의 경기를 주목해서 봤던 팬들은 부산의 추락은 감독보다는 주축 선수들을 대거 이적시킨 프런트의 책임이 더 크며, 부산이 경기에서 지기는 했지만 화끈한 공격축구로 볼만한 경기를 했다고 회고한다. 그 '공격축구'는, 팬들이 돌아오는 K리그를 만들기 위해 골을 많이 넣는 축구를 하자는 K리그 지도자들간의 일종의 암묵적 합의에 의해 이루어진, 다시 말해 팬들의 기대에 부응하여 나타난 것이다. 골을 많이 넣는 축구를 해달라고 할때는 언제고 뒤돌아서는 무능한 감독이라고 질타한다면, 어느 감독인들 리그에서 '대잠금'의 유혹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  
 
  김호곤 감독 부임 초기 비난 여론의 주된 이유가 된 나머지 이유들도 이 참에 짚어보고 넘어가자. 브라질과의 A매치에서 감독대행을 맡아 보여준 후반전 '교체쇼'는 분명 부적절한 것이기는 했다. 상대는 우리를 '월드컵 4강팀 한국'으로 인정하고 최선을 다한 경기를 했으며, 더욱이 자갈로 감독의 1백승 달성을 위해 어떻게든 이겨보려는 움직임이 역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한 경기를 이기지 못해 한국이 세계 최강이 되지 못한 양 김호곤 감독을 비난한 것은 경기 이면의 정치적 의도에 그대로 놀아나는 것 밖에는 안된다. 2002년 11월 11일에 개최된 한국ㅡ브라질의 A매치가 당시 대선 레이스에서 '월드컵 거품'이 빠져 지지율 하락세에 있던 정몽준 후보가 다시 한번 축구붐을 등에 업기 위해 추진한 작품이라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교체쇼'로 인해 '세계 최강'이 될 기회를 놓쳤다는 비난은 과도한 것이며 이는 김호곤 감독 본래의 임무인 '올림픽대표팀 감독'과도 연결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네덜란드 원정 후의 '히딩크 그 XX' 발언이 비난의 대상이 된 것도 문제가 있다. 당시 히딩크의 아인트호벤은 예정에 없이 경기 장소를 인조잔디로 변경해 결국 선수 보호 차원에서 아인트호벤 U-21팀과 한국 올림픽대표팀간의 경기가 취소되었고, 이것이 발단이 되어 '히딩크 그 XX'라는 돌출발언이 나왔으나, 엄밀히 말해 이는 기사화되지 말았어야 할 부분이다. 하이에나처럼 유명인의 말실수를 물고 늘어져 '파문'으로 확대하는 스포츠신문의 행태를 한두번 보았는가. 경기 외적인 부분에서 감독을 물고 늘어져 가십거리로 만드는 것은 엘리자베스를 대동하고 다니던 히딩크를 물어뜯던 스포츠신문들로부터 익히 잘 보아오지 않았는가. 그토록 비난해 마지 않던 스포츠신문의 행태를 축구팬들이 답습한 이 아이러니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이기면 선수발, 지면 감독탓 : 김호곤은 정말 '무전술 감독'인가


  김호곤 감독 부임 초기의 비난들에 대한 이와 같은 반박에 대해 '안티 김호곤' 축구팬들은 "우리는 그의 사소한 실수 때문에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무전술적 경기 운영 때문에 비난하는 것"이라고 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김호곤 감독은 정말 무전술 감독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그렇지 않다'고 단언할 수 있다. '무전술 감독'이라는 비난을 퍼붓는 팬들의 큰 착각 중 하나가 우리 선수들의 실력이면 아시아권 팀들은 그냥 뛰어도 이긴다는 것이다. 미안하지만 축구란 그런 것이 아니다. 11명의 선수가 전술에 따른 유기적인 움직임을 보여주지 못하고 각자 따로 놀게 되면 제아무리 개인 기량이 우수한 '올스타'를 모아놔도 그 팀은 패하게 되어 있다. '그냥 뛰어도 이길' 팀들이라면 한국 국가대표팀은 왜 베트남과 오만에 패하고 몰디브, 요르단과 비겼겠는가?


  김호곤 감독은 올림픽대표팀 감독 취임 이후 80명에 가까운 선수들을 올림픽 대표팀에 불러 옥석을 가렸고 그 전과정을 통해 발견되는 것은 감독이 일관된 전술적 효용 가치에 따라 선수를 뽑았다는 것이다. 일례로 '무뇌적 전술'로 '선수발'에만 의지해 명성있는 선수를 선발했다면 올림픽대표팀의 최전방 공격수는 조재진이 아니라 정조국이 되어야 했을 것이다. 수비라인에서도 청소년대표팀에서부터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여효진, 임유환이 뽑혀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정조국은 최전방에서 폭넓은 움직임으로 수비수를 달고 다니며 90분간을 감당할 수 있는 선수가 아니었고, 여효진 역시 장신인데 비해 협력수비와 맨마킹 모두에 있어 조병국보다 부족해 탈락했다.


  김호곤 감독을 '무전술 감독'이라 부르는 이들이 내놓는 또 한 가지 논거는 아시아 최종예선을 중도에 일회성 합류를 한 박지성, 이천수에 힘입어 치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이야말로 그들이 올림픽대표팀에 얼마나 관심이 없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천수는 올림픽대표팀의 남아공 및 유럽 전훈에도, 2003년에 여러 차례 실시된 강화훈련에도 함께 했던 선수다. 박지성에 대해서는 감독은 팀을 만드는 내내 박지성의 역할을 염두에 두고 구상을 그려놓고 있었다. 어느날 '느닷없이' 합류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김호곤 감독에 반대하는 팬들 뿐이었다. 평소에 합숙훈련하지 않았던 선수들을 이용해 경기에 승리했다고 해서 무전술 감독이라는 평가를 받는다면, 그 장기레이스를 펼치는 남미 지역예선에서는 호나우두의 힘을 빌지 않다가 월드컵 본선에서는 호나우두 '덕분에' 우승한 스콜라리야말로 '무전술 감독'의 전형이요 '선수발'의 덕을 본 '세상에서 가장 운좋은' 감독일 것이다!!



  지역예선, 평가전, 그리고 올림픽 본선까지 : '무뇌 감독'이 거두기에는 너무나도 좋은 성적

  무엇보다도 김호곤 감독이 취임 후 올림픽대표팀을 1년 10개월간 이끌면서 거둔 성적은 '무뇌 감독'이 거두기에는 지나치게 좋은 성적이다. 공식 경기 총 18승 6무 5패를 기록한 김호곤호는, 아시아 최종예선 전에는 10승 2무 5패를 기록했고, 이 전적 가운데에는 네덜란드 U-21을 그들의 안방에서 1 - 0 으로 누른 것이나, PSV아인트호벤과 2 - 2 무승부를 거둔 것도 포함되어 있다. 아시아 최종예선 중국전을 시발로 해서는 엊그제 파라과이에게 패할 때까지 14경기 연속 무패(8승 6무)를 기록했고, 특히 아시아예선을 무실점에 전승으로 통과한 것은 아시아 축구 역사상 몇 안되는 '진정한 당대 최강팀'으로 불리는 1989년의 이회택호(월드컵 아시아예선을 단 1실점으로 통과)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뒤늦게 '상대가 만만했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당시에 그런 평가를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중국, 이란과 한조에 속하자 아시아 축구계에서도 국내에서도 한국의 조는 '죽음의 조'로 꼽혔고, 중국의 U-23 대표팀은 결과적으로야 변변찮은 성적으로 패퇴했지만 최종예선 개막 전까지만 해도 사상 처음으로 유학파들이 대거 참여한 '플래티넘 세대'라며 기세를 올렸다. 뿐만 아니라 한국의 축구팬들은 테헤란 원정을 앞두고 얼마나 이란의 모발리를 걱정했던가!!


  이 팀들을 무실점 전승으로 제압하고 올림픽 본선에 진출하는 과정에서의 감독의 노력은 결코 '선수발' 한 단어로 간단히 무시하고 지나갈 성질의 것이 아니다. 한국의 전력에 비추어 볼때 아시아 예선 통과가 대단한 업적이라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감독은 가진 역량을 최대한 발휘해 제 몫을 했다는 뜻이다. 일례로 2003년 초에 실시한 남아공 고지대(해발 1900m)에서의 훈련이나 중국전 직후 쿤밍(昆明)에서 실시한 고원 적응 훈련은 모두 테헤란 원정을 승리로 이끈 원동력이 되었다. 한때 '골넣는 유전자가 없는 선수를 기용한다'는 비난까지 받았고 특히 정조국 팬들이 대거 '안티 김호곤'이 되는 계기를 제공했던 조재진은 고비마다 중요한 골을 터뜨리며 팀을 아테네에 진출시켰다. 아시아예선을 앞두고 코칭스태프가 상대팀을 분석하는 태도도 전에 없이 열의있는 것이었다. '무뇌 감독'이 이 모든 일들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올림픽 본선에서도 마찬가지다. 8강전 파라과이전에서의 용병술은 분명 적절치 못한 부분들이 있었고 이는 엄연히 감독의 책임이다. 그러나 그 이전까지의 김호곤 감독의 용병술은 결코 나쁘지 않았다. 감독 '덕분에' 올라간 것이 아니라 감독에도 '불구하고' 올라간 케이스라고?  한국 선수들의 개인 기량이, 딕 아드보카트라는 존재에도 '불구하고' 유로 4강에 진출한 네덜란드의 경우만큼 그리스, 멕시코, 말리에 비해 압도적이었다고 생각하는가?  조병국을 주축으로 한 안정된 스리백을 왜 본선에 가서는 흐트러 놓았느냐고 아우성치는 팬들이 있다. 그런데 이 흥분한 팬들은, 조병국이 대회 직전에 부상을 당해서 대회 첫경기 당시에는 아직도 회복중이었다는 사실은 어느새 까마득히 잊어버렸다.



  성난 팬들이 잊어버린 사실들 : 아무도 불운은 기억하지 않는다


  56년만의 올림픽 본선 조별리그 통과와 8강 진출을 달성한 이 감독에 대한 쏟아지는 비난은, '무전술'과 '선수발'에 이어 '운발'이라는 데까지 연결된다. 기실 올림픽 본선에서 한국은 행운이 꽤 따르기는 했다. 그리스전에서, 멕시코전에서, 골대를 맞춘 슈팅 중 하나만 들어갔어도 한국은 8강에 오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운이 따랐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전적으로 '운'에만 의지해 모든 것을 설명하는 것은 결과론에 불과하다. 패배에 흥분한 팬들은 우리에게 따랐던 행운은 기억하지만 감독과 선수들이 극복해야 했던 불운은 이미 기억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전에서의 김치곤의 억울한 퇴장과 주심의 부당한 PK 판정이 없었다면 한국은 멕시코전이 끝난 직후에 이미 8강 티켓을 손에 넣고 말리전에서는 여유있게 이정열, 남궁도, 김지혁을 교체해주며 주전의 체력을 비축하는 한편 경기 감각을 가다듬었을 것이다. 말리전에서 은디아예의 첫골에 앞선 핸들링 반칙이 제대로 잡혔더라면 한국은 조별 예선 최종전에서도 벼랑끝에 몰리지 않았을 것이다.


  더욱 거슬러 올라가면 정말 '본질적인' 불운 두 가지가 자리잡고 있다. 하나는 사스(SARS) 여파로 인해 2003년에 이미 끝났어야 할 올림픽축구 최종예선이 2004년 봄으로 늦춰진 것이다. 일부 팬들은 인정하지 않을지도 모르고 또한 선수들에게 미안한 말이기도 하지만, 몇몇 포지션에서는 '아시아용 선수'와 '세계 무대용 선수'는 따로 있다. 아시아 레벨에서는 통하는 일정한 수준의 힘과 높이를 갖추고 있으나 유럽팀을 상대로는 기량이 미달하여, 지역예선을 편하게 통과하기 위해서는 기용할 수 있지만 본선에서는 정작 거의 통하기 어려운 선수들이 있는 것이 현실이다. 또한 와일드카드의 기용은 지역예선에서는 금지되어 있다. 만약 이번 아테네 올림픽 축구의 아시아 예선전이 정상적으로 치뤄졌다면 김호곤 감독은 지역예선을 결절점으로 팀을 재정비할 기회를 좀더 일찍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다른 하나의 '본질적인' 불운은 와일드카드에 있다. AFC가 아시안컵 개최 시기를 여름으로 당겨 올림픽과 맞물리게 한 것은 2004년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ㅡ 다음 대회부터 아시안컵은 올림픽 직전 해에 치뤄지므로 ㅡ. 올림픽과 시기가 맞닿아 있을 경우 필연적으로 스쿼드를 분리할 수 밖에 없는 한국, 일본 등의 강호를 의식한 다른 아시아 준(準)강호들과 개최국 중국의 입김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이로써 전무후무하게 와일드카드를 마음대로 뽑지 못하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 김호곤 감독의 불운이었다. 감독 본인은 올림픽 메달권 진입을 위해 자신의 팀에 부족한 부분이 어디에 있는지를 정확히 잘 알고 있었고, 지역예선이 끝난 후 불과 3개월도 안되는 시간 동안 이를 메울 방법은 와일드카드 밖에 없었기 때문에 와일드카드를 강력히 요구했으나, 역대 어느 감독도 겪어보지 못한, 일부 선수에 대한 '선발 불가'라는 상황에 처해야 했던 것이다 ㅡ 물론 이러한 불운들을 김호곤 감독에 대한 평가의 요소에 전적으로 포함시켜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불운과 같은 돌발 요소에 대비하고 극복하는 것도 때로는 감독의 임무이기 때문이다. 다만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행운이 따랐던 만큼 불운도 있었고, 최종 성과는 그러한 불운 또한 극복하면서 이루어진 것이라는 점이다 ㅡ.



  외국인 감독에 대한 맹신과 그로 인한 이중적인 잣대, 이제는 버려야

  이 대목에서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부 '안티 김호곤' 축구팬들의 이율배반적인 태도이다. 그들은 히딩크 이래 코엘류, 본프레레호를 거치면서 일관되게 '감독이 원하는대로 선수를 뽑을 수 있도록 전권을 주라'고 외치고 있다. 차범근 감독 시절 선수 선발에 기술위원회의 입김이 작용한 것을 비판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김호곤 감독의 이천수, 박지성 차출이나 와일드카드 선발에는 두팔 들고 반대하고 나선 것이 또한 이들이다. 왜 한국 감독은 '원하는대로 선수를 뽑으면 안되'는가?


  그와 같은 반대 논리에는 수긍할 수 있는 면과 그렇지 않은 면이 혼재한다. 올림픽과 아시안컵의 일정이 맞닿은 초유의 상황에서 팬들은 선수의 혹사와 선수생명 단축을 우려했다. 김남일에 대한 이러한 우려는 분명 타당했고, 김남일의 부상 자체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다행히 그는 아시안컵과 올림픽, 그리고 K리그를 연달아 뛰는 최악의 상황은 어쨌든 피했다. 그러나 이천수, 박지성, 송종국에 대한 반대는 이율배반적인 것에 가까웠다. 이천수, 박지성은 애초부터 연령이 U-23인 만큼 감독이 그들을 기용하겠다는 생각을 갖는 것은 결코 무리가 아니다. 송종국은 한국의 부실한 오른쪽 라인을 보충할 수 있는 회심의 카드였다.


  그러나 박지성과 송종국의 '소속 클럽에서의 입지'를 고려해 팬들마저 불참을 지지하는 사이, 페예노르트는 노회한 수법으로 송종국의 차출을 피해나갔고 ㅡ 부상당해 올림픽에 참가할 수 없다던 송종국이 에레디비지에 개막 첫 경기에서 무엇을 했는지 보라!! ㅡ 박지성 또한 아시안컵에서만 세 경기를 뛰고 PSV로 돌아가 맹활약하고 있다. 묻고 싶은 것은 그들이 이제 '누구를 위해' 뛰는가 하는 것이다. KFA 엠블렘이 붙은 유니폼을 입고 그들이 할일은 더 이상 남아있지 않은 것인가?  병역 특례도 얻고, 경제적 안정을 얻었으며, 해외 진출까지 성공한 선수들이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 뛰는 경기에서는 더 이상의 성취 동기가 남아있지 않아 국가대표 전력이 공동화되는 현상을 보면서도 팬들의 '유럽 클럽 편들어주기'와 '감독의 무리한 차출 반대'는 지당하다고 해야 할까?


  설령 백보를 양보해서, 한 나라의 축구 자원이 최우선순위로 집중되어야 할 곳은 국가대표팀이기 때문에, 올림픽대표팀 감독은 좀 참아야 한다고 하는 것이 축구팬들의 일치된 의견이라면, 기대치 또한 그에 맞게 하향 조정되는 것이 옳다. 그리고 그 하향 조정된 기대치는 '4강'이 아니라 '8강'이 적당하다. 올림픽대표팀은 그 기대치를 충족하는 성과를 거뒀다. 그런데 '안티 김호곤'들의 기대치는 낮아질줄 모르고 오히려 파라과이전에서 패하자마자 기다렸다는듯이 감독을 비난하기에 바쁘다.


  이런 이율배반적인 모습은 본질적으로 국내 감독에 대한 불신과 외국인 감독에 대한 맹신에 기인하고 있는 바가 크다. 물론 그간 한국 감독들이 우리 축구팬들을 실망시키고 때로는 좌절에 이르기까지 하였음을 모르는 바가 아니다. 그러나 외국인 감독만을 한국 축구의 '구세주'로 여기고, 그 '구세주'가 왔어야 할 자리에 '못 미더운' 한국 감독이 앉아있다는 이유로 그에게 가해지는 과도한 비난과 지나치게 엄격한 잣대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움베르토 코엘류가 베트남, 오만에 패하고 몰디브와 비길 때도 내내 '기다려 주자'는 여론의 지지를 받는 '행운'을 누린데 비해, 아시아 예선을 무실점 전승으로 통과하고, 같은 연령대의 네덜란드 대표팀을 이겨보고, 라이벌 일본과도 좋은 경기를 보여주고, '56년만의 올림픽 8강 진출'을 이뤄냈으며 종국적으로는 성공적인 세대교체의 디딤돌을 놓는데에 기여한 감독은 일부 팬들로부터 단 한번도 인정을 받지 못하고 '호로곤'이라는, 입에 담기조차 민망한 욕이나 들어야 하는 현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맺으며 : 김호곤을 위한, 아니, '제2, 제3의 김호곤들'을 위한 변명

  이 글의 본론에서 감히 지적하지 못한 한 가지가 있으니 그것은 히딩크에 관한 것이다. 자국 대표 선수들과 코칭스태프가 최선을 다해 이뤄낸 성과마저 '행운의 산물'로 치부해버리는 일부 팬들에게, 나는 그들이 어떻게 한국의 월드컵 4강은 '운발'로 돌려버리지 않고 인정하며 받아들였는지 묻고 싶었다. 김호곤 감독에게 적용하는 잣대를 똑같이 적용한다면, '포르투갈이 골대를 맞추지 않고 골을 넣었다면?' '비에리가 골문 2m 앞에서 홈런을 날리지 않았다면?' '모리엔테스가 골대를 맞추지 않고 골을 넣었다면?'이라는 질문들에 그들은 어떻게 답할 것인가 말이다 ㅡ 오해를 피하기 위해 덧붙인다면 나는 올림픽 8강은 물론이고 월드컵 4강도 결코 '행운'의 산물로 보지 않는다 ㅡ.


  그러나 이내 그러한 질문을 던질 마음을 접어야 했으니, 그것은 김호곤 감독이 왜 팬들의 미움을 사기 시작했는가를 다시금 떠올린 까닭이다. 그는 영웅이 만들어 놓은 스쿼드와 전술을 그대로 쓰지 않고 마음대로 교체를 단행하다가 팬들의 미움을 샀다. 그는 영웅을 감히 막말로 지칭했다가 팬들의 미움을 샀다. 그리고 그는, 모든 것을, 심지어는 잔디에 물뿌리는 것까지 통제할 수 있는 환경에서 영웅이 이룬 업적을 뛰어넘지 못해, 영웅이 했던 것 ㅡ 2003 에레디비지에 마지막 경기에서의 PSV의 볼돌리기 ㅡ 을 똑같이 하고도 안티 세력들의 비난을 받아야 했고 TV 인터뷰에서 '우선 국민 여러분께 죄송하다는 말씀부터 드리고...'라고 말해야 했다.


  어느 팬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월드컵 4강은 선수들에게도 독(毒)이었지만 팬들에게도 독이 되고 있다". 이 말은 지극히 타당하다. 언제부터인가 멕시코나 파라과이쯤은 우리 팀이 '당연히' 이겨야 할 팀으로 여기고, 1라운드 통과는 당연한 성적으로 아는 팬들이 생겨났다. 외국인 감독이라면 한국의 팀 컬러에 적합한지 아닌지 따져보지도 않고 쌍수를 들고 환영하며 '시간을 주자' '모든 것을 지원하라' '기다려 주자'고 외치면서 한국인 감독은 '역시 거기까지가 한계다'라고 손가락질하는 팬들이 생겨났다.


  이런 현상은 한국 축구의 미래를 생각할 때 정말 위험한 독(毒)이다. 외국인 감독을 맹신하고 한국인 감독을 깎아내리기에 바쁜 팬들은, 국제 무대 경험이 있는 한국 지도자들을 차근차근 키워야 한다는데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않은채, 12년만의 2라운드 진출에 성공한 박성화를 깎아내리기에 바빴고, 성적에 집착하지 말아야 할 U-17 레벨에서의 세계대회 1라운드 탈락조차 문제삼아 선수들은 더없이 좋은 감독이라고 칭송하는 윤덕여를 쫓아내라고 아우성이었고, 이제는 '56년만의 승장' 김호곤 감독마저 거기까지가 한계라고 손가락질하기에 바쁘다. 윤덕여를, 박성화를, 김호곤을 모두 몰아내고, 우리는 20년이고 30년이고 외국인 감독만 쓸 참인가?  그래서 브라질 사람이 오면 브라질식 축구를 하고, 네덜란드 사람이 오면 네덜란드식 축구를 하고, 프랑스 사람이 오면 프랑스식 축구를 할 참인가?


  선수 생활을 곧 마무리하는 홍명보가 축구 지도자가 아닌 축구 행정가의 길을 걷기로 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아시아의 대스타 김주성도 축구행정가의 길을 걷고 있다. 누구보다도 국가대표팀 생활을 오래했고 국가대표팀 감독이 받는 압력을 아는 그들이 '축구 지도자'가 아닌 '축구 행정가'를 택한 것이 내 눈에는 결코 우연으로 보이지 않는다. 1976~1978년 국가대표팀 주장으로 선수 시절의 경력에서도 꿀릴 것이 없고, 허정무도, 크라머도, 아나톨리 비쇼베츠도 이루지 못한 한국의 8강 진출을 이뤄낸 감독이 자국 최대의 축구 사이트에서는 돌팔매를 맞고 있음에야, 누가 감히 지도자의 길을 걷고자 하겠는가.


  이 장문의 글은 그래서 '김호곤을 위한 변명'이자, '제2, 제3의 김호곤들'을 위한 변명이기도 하다. 김호곤 감독이 이런 비난을 받을진대, 하물며 훗날 '이민성 감독'이나 '김상식 감독'이 나온다면, 그들이 단 한 경기라도 패할 때마다 받는 비난은 오죽이나 하겠는가. 김호곤 감독이 이번 올림픽대표팀 감독 임기중 거둔 성과물은 단언컨대 역대 어느 국내 감독보다도 뛰어난 것이며, 그는 그에 걸맞는 평가를 받을 자격이 있다. 중국이나 이란이 그토록 갖고 싶어해도 갖지 못한 것을 어찌하여 우리는 발로 차고 던져버리기에 바쁜가?  이제 국내 감독들이 이뤄낸 성과물도 인정하고 칭찬해주는 풍토가 정착되고, 그리하여 승장이 패장처럼 취급받고 '죄송하다'는 말로 인터뷰하는 모습을 더 이상 보지 않게 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