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1월 25일 금요일

[축구] 최용수를 위한 변명 (2011. 11. 22.)

  * 이 글은 2011. 11. 22.에 FC서울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쓴 글입니다. http://j.mp/sHKzvt






  * 이 글은 제법 깁니다. 보시는 팬들마다 결론에 대한 의견은 다를 수 있겠지만, 최용수 감독의 공과를 논함과 더불어 이번 시즌을 결산하고 우리가 앞으로 보완해야 할 내용도 함께 담고 있습니다. 글이 길더라도 되도록이면 끝까지 읽어주시고, 함께 많은 토론을 나누어 보았으면 합니다. 아울러 구단 관계자 여러분들께서도 이 글을 한번쯤은 차분히 정독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최용수를 위한 변명
 

  
  글을 시작하면서 먼저 한가지 밝힌다. 나는 ‘최용수빠’다. 처음부터 ‘감독 최용수’의 열렬한 지지자였던 것은 아니다. 황보관씨가 경질되고 최용수 수석코치가 감독대행이 된다는 공식발표를 접했을 때 ‘감독 최용수’에 대해서는 확신이 없었다. 발표 전날 ‘황보관 경질설’을 다른 경로를 통해 들었지만 그 때 함께 듣기로도 “수석코치를 당장 감독으로 승격시키기에는 난감한 상황이라는 것이 중론”이라고 했었다. 90년대 아시아를 평정했던 스트라이커 ‘독수리 최용수’의 전과정을 지켜봐온 사람으로서 선수 시절에 대한 추억과 향수는 당연히 있지만, ‘감독 최용수’는 어디까지나 그것과는 별개였다. 오히려 단순하고 투박한 이미지가 강하게 남아있는 그가 과연 좋은 지도자가 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는 것이 솔직한 고백이다. 경험적으로도 공격수 출신은 미드필더나 수비수 출신보다 지도자로 성공하기 어렵다는 점에서도 물음표를 떨칠 수 없었다.



  선입관을 깨뜨린 최용수의 감독 데뷔전  
 
  기대 반, 의구심 반으로 중계를 통해 지켜본 첫 경기부터 ‘감독 최용수’는 그런 선입관을 여지없이 깨뜨렸다. 황보관씨가 추락시킨 팀 순위, 감독 경질로 어수선해진 상황에 폭우까지 겹쳐, 1만명이 채 안되는, 최근 몇 시즌을 통틀어 홈 최소 관중이 입장한 제주전. 원균이 칠천량에서 몰살시킨 수군을 넘겨받아 배 열두 척으로 싸우는 것과 같은 상황이었던 그 경기에서 최용수는 90분간 온몸으로 비를 흠뻑 맞으며 전력을 다해 독전(督戰)했다. 지난 시즌 베스트드레서로 이름을 떨친 감독 답게 자기 옷이 젖을까봐 비옷을 입고 자리에 차분히 앉아 있었던 바로 옆 벤치의 제주 박경훈 감독과는 너무나도 대조적인 그림이었다(이는 동시에 내가 제주 박경훈 감독을 서울 감독으로 영입하자는 주장에 전혀 동의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 폭우 속에서 열린 4월 30일 제주전. 온몸으로 비를 맞은 최용수 감독과 대조적으로
제주 박경훈 감독은 비옷을 입고 있다.
이날 최용수 감독이 혼신을 다해 선수들을 독전하는 동안
박경훈 감독이 벤치에 앉아 있는 장면은 자주 카메라에 잡혔다.


 
  그날 경기는 서울이 2-1로 이겼다. 이날의 역전승이 이번 시즌 반전의 주춧돌이 된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팀이 위기에 봉착한 상황에서 ‘감독 경질 효과’와 선수들의 각성으로 정신력만 독려해도 절대 질 수 없는 경기였다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축구가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감독 경질한 뒤 첫 경기에서도 또 지거나 잘해야 비기는 팀을 나는 K리그에서도 유럽 리그에서도 여럿 봐왔다. 어차피 그날의 승리는 전술적 능력이 관건은 아니었다고 해도, 적어도 최용수는 감독 데뷔 첫 경기에서 ‘리더십이 무엇인지 아는 감독’의 모습을 온몸으로 보여주었다. 머플러를 목에 걸치고 폼만 잡으며 인터뷰에서 허언(虛言)만을 일삼던 감독이 나가고 새로 지휘봉을 잡은 감독은 첫 경기부터 선수들과 온몸으로 비를 맞으며 동고동락한다ㅡ 선수들에게 그보다 더 강한 메시지는 있을 수가 없었다. 그 다음 경기부터 나는 다시 상암을 찾기 시작했다.
 
 
  14위에서 9위, 6위를 거쳐 3위까지
 
  그 후 최용수 감독이 이끄는 서울이 걸어온 과정은 모두가 아는 그대로다. 황보관씨가 경질될 때 7라운드를 마치고 14위까지(우리 뒤에는 올 시즌 ‘K리그의 더비 카운티’였던 강원과, 구단주가 돈줄을 묶어버린 성남만이 있을 뿐이었다) 추락했던 팀은 슬슬 순위를 치고 올라오더니 9위, 6위를 거쳐 3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정규리그 성적 15승 4무 4패, 우리가 패한 상대는 대구와 성남, 그리고 오심으로 억울한 패배를 당한 수원 뿐이었다. 2위 포항을 턱밑까지 따라 붙었다가 일격을 당한 9월 대구전이 못내 아쉽기는 하지만, 그 전까지 우리는 6, 7, 8월 석달 동안 리그에서 11전 8승 3무를 기록하며 단 한번도 지지 않았기에 그 패배는 확률상 언젠가 한번은 겪을 수 밖에 없는 패배였다.
 
 

  무승부가 승률 계산에 영향을 주는 야구와 달리 오로지 ‘승리’만을 승률로 계산하는 축구에서 60%를 넘는 승률은 수준급의 감독만이 올릴 수 있는 승률이다. 감독 데뷔 시즌 정규리그 승률 65.2%(K리그 29시즌 사상 신인감독 역대 최고 승률), 모든 대회 통산 데뷔 시즌 20승 달성(20승 5무 8패, 승률 60.6%, 역대 신인감독 데뷔 시즌 다승 2위)14위까지 추락했던 팀을 추스르며 3위까지 도약, 안양 시절은 물론 ‘럭키금성축구단’ ‘LG치타스’ 시절에도 못해본 팀 최다연승 7연승 기록ㅡ 이상의 성적만으로도 구단은 최용수 감독의 노고를 인정하고 일찌감치 ‘대행’ 꼬리표를 떼어줬어야 맞다. 적어도 내가 아는 축구 기자들은 이구동성으로 그렇게 평가했다.
 


▲ 시즌 초반 최악의 부진에 빠졌던 FC서울이 14위에서 3위까지 도약해 정규리그를 마감할 수 있었던 데에는
최용수 감독의 공로가 컸다는 점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6강 플레이오프, 최악의 패퇴,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행’ 꼬리표를 떼지 않고 시즌 끝까지 온 이상에는, 프런트가 생각하고 있던 마지노선은 ‘아챔 출전 티켓 획득’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어쩌면 서울 팬들 상당수가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있던 마지노선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마지노선이 어제 무너졌다. 아챔 출전 좌절도 문제지만 경기 내용이 참혹할 정도로 나빴다. 홈에서 3실점을 한 것이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 팬들이 대부분일 것이고, 나 역시 후반 막판에 E석 관중들이 그렇게 많이 집에 가는 것을 본 기억이 없다. 최악의 패퇴였다. 
 
 

  그것으로서 올 시즌 FC서울의 도전은 끝이 났고, 동시에 그 경기는 ‘최용수 감독’의 최종전이 될 가능성도 높아졌다. 솔직히 인정한다. 여전히 ‘정식감독 최용수’에 대한 미련이 있지만, 객관적으로 할 말이 빈약해진 것은 사실이다. 황보관씨가 조금만 승점을 덜 잃고 갔더라도 정규리그 2위가 충분히 가능했지만, 3위를 하면 단판 승부 두 판을 이겨야 아챔에 나가는 것은 정해진 룰이다. 불합리해도 어쩔 수가 없다. 그 룰에 따른 기대치는 충족되지 못했고, 내년에 우리 팀은 아챔에 나가지 못한다. 팬들의 실망은 최고조에 이르렀으며, 어제 경기를 관전했다는 허창수 구단주도 “최용수로는 안되겠다, 외국인 감독을 꼭 영입해라”고 지시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그랬는지 안 그랬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최용수 감독이 올 시즌 보여준 훌륭한 성과가 한꺼번에 폄하되어서는 안될 일이다. 물론 비판받을 것은 비판받아야 한다. 이 글은 그러한 비판에도 소홀하지 않을 것이다. 더 많은 지적과 비판이 ‘초보감독 최용수’를 더욱 지혜롭게 만들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최용수 체제’가 얼마나 불안정한 위치에서, 어느 정도로 지원을 받지 못한 채로 이만한 성과를 이뤄냈는지도 정확히 기억할 필요가 있다.
 
 

  울산과의 6강 플레이오프, 최용수 감독이 잘못한 것들

  먼저 최용수 감독의 실책부터 지적하자. 어제 경기는 감독의 실책도 일정 부분 패배의 원인이 되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지적해야 할 실책은 경험이 적은 고광민을 선발로 기용한 것이다. 보통은, 감독이 특정한 선수를 선발로 기용할 때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팬은 선수를 잘해야 일주일에 한번 보지만, 매일 선수를 관찰하는 감독은 팬이 보지 못하는 다른 많은 것들을 본다. 그런 점에서 나는 어지간해서는 스타팅 라인업을 문제삼지는 않는 편이다. 고광민이 강릉 전지훈련에서 유난히 좋은 컨디션을 보여주었을지도 모르지 않는가.
 
 

  그러나 최용수 감독의 선택은 그날만은 달랐어야 했다. 아무리 훈련장에서 물오른 감각을 보여주더라도, 토너먼트 단판 승부는 경험이 우선이다. 큰 무대 경험 이전에 올해 리그 출장경기수 자체가 적은(어제 경기가 6경기째) 고광민은 선제골을 허용하자 당황하고 조급해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최용수 감독 스스로 선발 기용의 실패를 인정하고 하프타임에 최태욱으로 교체했듯이, 선발에는 처음부터 최태욱이 들어가는 것이 맞았다. 산전수전 다 겪어본 김호곤 감독이 노련하게 서울을 깰 비책을 준비해온데 비해, 감독으로서는 플레이오프 무대에 처음 서 본 최용수 감독은 너무 나이브한 선택을 했다.



▲ 선발 멤버 기용에 관한 최용수 감독의 나이브한 선택은
6강 플레이오프 울산전 패배의 주요한 원인이 되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좋지 못한 전반전 경기 내용에 더 원인이 있는 선발 기용으로는 한태유 선수도 있다. 올 시즌 리그 2경기 출전에 불과한 한태유를 선발로 결정한 배경에는 이해가 가는 측면도 없지는 않다. 하대성이 부상으로 인해 출전하지 못하는 것으로 경기 전날 정리가 되었고, 리그 최종전 경남과의 경기에서 한태유를 기용해 결과가 좋았던 기억도 생생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결과는 어디까지나 하대성-한태유를 나란히 기용했을 때의 결과였다. 한태유 혼자 중원을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물론 진짜 문제는 중원보다는 다른 곳에 있었지만 말이다.
 
 
  어제 패배에 관하여 (내키지 않는 일이지만) 굳이 특정 선수의 잘못을 지적하자면 김용대 선수와 현영민 선수의 잘못이 크다. 첫번째와 두번째 실점 상황은 누가 봐도 김용대의 판단 착오다. 골키퍼가 수많은 경기를 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다고 넘어가기에는 어제 경기는 너무 중요했다. 그래도 어제 우리에게 경기를 뒤집을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니 그럴 수 있다고 쳐도, 현영민의 실수는 정말 해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주장 완장을 차고 나온 베테랑 멤버가 1-2로 추격골이 들어간 상황에서 앞장서서 ‘붕 뜬’ 상태가 되고 말았다. 킥오프 직후 정상적인 수비 위치에 복귀해 있지 않다가 상대의 기습공격에 측면이 뚫려 실점의 빌미를 제공했다. 자신과 동료들의 침착성을 유지시켜야 할 주장으로서의 덕목을 그 순간 현영민에게서는 어찌된 일인지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어제 경기는 1-3이 된 순간 사실상 경기가 끝나버렸다. 주장이 이런 실책을 하는 경기는 이길래야 이길 수가 없는 경기다.
 
 

  그러나 이 또한 궁극적으로는 최용수 감독이 책임져야 할 몫이다. 우리는 어제 여러모로 운도 따르지 않았다. 데얀의 오프사이드 골은 처음부터 오프사이드 선언이 되었으면 차라리 나았을 것을, 골이 인정되었다가 취소되는 바람에 선수들의 심리 상태에 찬물을 끼얹었다. 최현태의 회심의 슈팅은 골대를 때렸다. 만약 골이 되었다면 경기 결과는 정말 알 수 없었을 것이다. 경기 며칠 전 갑자기 부상당한 하대성도, 9월 김한윤의 가격으로 시즌 아웃된 문기한도 없는 상황에서 우리의 가용자원에는 분명 제약이 있었다. 특히 하대성의 공백은 단순히 ‘제약’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정도를 훨씬 넘어서는 것이다. 그런 불운과 제약에도 불구하고, 결과는 감독의 책임이 맞다. 노회한 김호곤 감독은 울산의 장점을 극대화한 전법을 철저히 훈련시켜 가져왔지만 그 전술은 익히 예상된 것이었고, 비록 우리가 제공권에 약점이 있다고는 하지만 보름은 준비하기에 결코 짧은 기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돌이켜 보면, 최용수 감독에 대한 이런 아쉬움은 이번 6강 플레이오프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컵대회 8강전이야 중요성도 떨어지는 경기였던 데다가 당시에는 리그 순위가 훨씬 급한 상황이었으니(바로 다음 경기가 전북 원정이었다) 후보들을 내세워 지고 돌아온 것을 누구나 이해한다. FA컵 8강전은 비록 탈락했지만 원정이었고 할만큼 한 후회없는 경기였다고 생각한다(그 경기는 노병준이 너무 잘했다). 그러나 1-2가 된 다음에 세번째 실점을 허용해서 결국 발목이 잡힌 알 이티하드와의 아챔 8강 1차전과 어제의 울산전은 묘하게 닮은 구석이 많다. 그래서 적지 않은 팬들이 최용수 감독의 단기전 지휘 능력에 의구심을 표하는 것이고, 이는 일정 부분 일리가 있다. 감독대행 시즌부터 ‘무전기 매직’을 선보인 신태용 감독과 달리 단기전 지휘 능력은 초보감독 최용수가 아직 갖추지 못한 부분이 맞다. 앞으로 나아질 수 있겠지만, 현재로서는 객관적으로 인정해야 할 점이다.
 
 

  그러나, 결코 나쁘지 않은, 오히려 훌륭했던 최용수의 리그 운영 능력

  하지만, ‘우리 팀의 다음 시즌 감독을 누구로 할 것인가’에 있어 최용수 감독의 단기전 지휘 능력 결여가 판단 기준으로 작용한다면, 이는 잘못된 것이라고 본다. 다음 시즌은 올 시즌과 구조가 매우 달라지기 때문이다.
 
 

  올해 서울은 모든 대회를 통틀어 총 44경기의 공식 경기를 치뤘다(정규리그 30경기, ACL 9경기, FA컵 3경기, 컵대회 1경기, 챔피언십 1경기). 내년에는 리그만 우리가 올해 소화한 전체 경기와 맞먹는 44경기다. 대신에 컵대회는 없어진다. ACL은 (안타깝게도) 안 나간다. 단판 승부로 아챔 출전 티켓이며 최종 우승팀을 정하는 챔피언십도 없어진다. 모든 것은 44라운드까지 치뤄지는(30라운드 이후는 상위 스플릿 8팀 간의 경기) 리그 순위로 정해진다. 우리가 나가야 할 단기전은 FA컵 밖에 없다. 내년에 리그 우승컵을 되찾아오거나, 적어도 아챔 출전권은 재확보해 자존심을 회복하는 것이 목표라면, 감독 선임에 있어 중요한 것은 단기전 지휘 능력이 아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감독의 ‘리그 운영 능력’이다. 선수 발굴, 선수 기용, 전술적 능력과 같은 감독의 기본적인 능력을 포함해 팀 컨디션 관리, 선수 로테이션, 팀 케미스트리에 이르기까지 장기 레이스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요소들이 이 ‘리그 운영 능력’에 포함된다. 시즌의 처음부터 끝까지 (당연히 중간 중간 한두번씩 질 수는 있어도) 큰 슬럼프 없이 리그를 운영하면서 라운드당 평균 승점 2점 이상을 따낼 수 있다면 수준급의 감독이라고 할 수 있다(이런 점에서 예컨대 시즌 중에 6연패를 당한 수원 윤성효 감독은 비록 최종 순위는 나쁘지 않았을지 몰라도 리그 운영 능력면에서는 낙제점에 가깝다).
 
 

  참고로 이 ‘라운드당 평균 승점 2점’은 내 개인적인 기준이 아니라 유럽에서의 기준이 통상 그렇다. 리그는 홈에서 한번, 원정에서 한번 경기를 치른다. 이때 강팀이라면 홈에서는 이겨야 하고, 원정에서는 불리한 여건에도 불구하고 무승부는 거두고 올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1승 1무를 하면 2경기에서 승점 4점을 쌓게 된다. 그래서 기준이 ‘라운드당 평균 승점 2점’인 것이다. 시즌 중에 다소 진폭이 있더라도 시즌 끝까지 경기당 평균 승점 2점 이상의 페이스를 유지한다면 팀은 1, 2위를 다투게 된다. 지금 당장 주요 리그의 역대 시즌 순위표를 확인해보면 이 기준이 충분히 유의미한 것임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 시즌 보여준 최용수 감독의 리그 운영 능력은 어떠했을까. 아래 표를 한번 보자.


▲ 최용수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8라운드부터 최종 라운드까지를 기준으로 한 2011 K리그 순위표. 
이 기간 동안 서울은 전북과 매우 근소한 차이로 2위에 해당하는 성적을 올렸음을 볼 수 있다. 
물론 기록이 모든 것을 다 보여주는 것은 아니지만, 기록은 거짓말을 하는 법이 없다.



  최용수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8라운드부터 최종 30라운드까지 23라운드를 기준으로 한 리그 테이블이다. 표를 보면 눈에 띄는 점이 몇 가지 있다. 첫째, 황보관씨가 하도 승점을 많이 잃고 가서 그렇지(우리는 끝까지 그 뒷감당을 하다가 시즌을 마쳤음이 한눈에 보인다), 8라운드부터의 성적을 기준으로 하면 서울은 3위가 아닌 2위이고, 전북과의 승점차도 단 1점에 불과하다. 한 경기를 남겨놓고 정규리그 1위를 확정지은 전북이 마지막 경기는 최선을 다하지 않아 무승부에 그쳤다고 가정해서 승점 2점을 더해주더라도 승점차는 3점에 불과하다. 우리 선수들은 훌륭한 선수들이지만, 전북이 우리보다 더 두터운 스쿼드를 가졌다는 데에 이의를 달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정도의 결과는 양팀 스쿼드층을 비교할 때 최용수 감독이 잘했으면 잘했지 못한 결과가 아니다.
 

  둘째, 우리가 올 시즌 수비를 굉장히 못한 것 같지만, 전체적으로 우리 수비는 결코 나쁘지 않았다. 득점은 이제 ‘닥공’이 수식어가 된 전북과 실상 2골 밖에 차이가 나지 않고, 실점은 경쟁팀이었던 포항, 수원, 그리고 안익수 감독이 수비를 탄탄하게 구축하는데 성공했다는 부산과 완전히 대등한 수준이다. 김호곤 감독의 울산만이 독보적인 ‘짠물 수비’를 보여주었을 뿐이다.




▲ '그 정도 선수로 그 정도 성적을 못 거두는 게 말이 되느냐'며 최용수 감독의 성과를 폄하하는 시선도 있다.
그러나 축구는 결코 선수들끼리 알아서 해도 그만인 스포츠가 아니다.
출중한 선수들일지라도 그들의 능력을 극대화시키는 것은 어디까지나 감독의 몫이다. 



  무엇보다도, 위 표를 보면 ‘경기당 평균 승점 2점’ 이상(그것도 2.2점대)을 따낸 감독은 최강희 감독과 최용수 감독 뿐인 것을 볼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성과에는 항상 다음과 같은 반론이 따라 붙는다. “그것은 데얀(과 몰리나)이 잘한 결과이지, 그만한 선수로 그 정도 성적을 누가 못 거두나?” 타당하지 않은 비판이다. 축구는 선수들이 알아서 하는 경기가 절대 아니다. 한두번의 반짝 상승세라면 모를까, 14위에서 출발해서 3위까지 올라오는 것은 감독이 무능하다면 절대 나올 수 없는 결과다. 멀리 갈 것도 없이 황보관씨가 팀을 이끌 때 그 데얀으로 리그에서 골을 넣은 경기가 1경기 밖에 안되는 것은 무엇으로 설명할 것인가. 또한 우리에게는 ‘데몰리션’과 견줄만한(아니, 오히려 뛰어난) 데얀과 박주영, 데얀과 정조국이 있던 시즌들이 있었다. 그 시즌들을 모두 우승한 것도 아니고, 귀네슈와 빙가다가 ‘선수빨’로 감독을 한 것도 아니다. 출중한 선수들을 데리고 있더라도 그 선수들의 능력을 최대로 이끌어내는 것은 분명히 감독의 중요한 덕목이다. 최용수는 적어도 올 시즌 정규리그에서 이 점만큼은 대단히 성공적이었다고 보아야 한다.
 


▲ 전북 최강희 감독(위)과 서울 최용수 감독(아래). 올 시즌 K리그 8라운드부터 30라운드까지
라운드당 평균 승점 2점대 이상을 끝까지 유지한 감독은 이 두 사람 뿐이다. 



   세 번의 위기를 무난히 넘긴 최용수 감독의 위기관리능력

  수치상으로 드러나지 않는 팀 컨디션의 측면에서도, ‘감독 최용수’는 초보감독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위기를 유연하게 잘 넘겼다. 최용수 체제하에서 서울의 팀 사이클상 위기라고 할 수 있었던 시기는 세 번 있었다. 첫번째는 5월 21일 대구전 홈 패배(0-2)였다. 감독 교체 후 그 전까지 리그 3연승을 포함, 5승 1무(아챔 1승 1무, FA컵 1승 포함)를 달려온 서울이 패배하자 ‘감독 교체 효과로 일시적인 상승세를 달렸지만 여기까지가 끝인 것이 아니냐’는 관측들이 나왔다. 그날 패배가 던져준 과제는 세 가지였다. 신장을 이용한 상대 코너킥에 대한 대비책, 여전히 겉도는 데얀과 몰리나, 그리고 하대성이 있을 때와 없을 때 기복이 큰 전력차였다. 바로 다음 경기는 가시마와의 홈 단판 승부였다. 세 가지 과제 중 뒤의 두 가지는 구조적인 문제라 4일 만에 고칠 수 없는 것이었지만, 그래도 감독이라면 단판 승부를 앞두고 어떻게든 답을 내야만 했다. 가시마전에서 최용수 감독은 몰리나를 선발에서 제외하고, 하대성을 복귀시켰으며, 문전에서의 헤딩 기회를 거의 허용하지 않으면서 가시마를 3-0으로 셧아웃시켰다. 스코어도 스코어지만 완벽하게 가시마를 지배한 경기였다.



▲ 가시마 앤틀러스와의 2011 AFC 챔피언스리그 16강전에서 세번째 골을 넣고
골 세레머니를 하러 달려가는 고명진.
이날 경기는 '최용수 체제'가 첫 위기에서 '정답'을 보여주며
상대를 완벽히 지배했다는 데에 큰 의미가 있었다. 

 
 
 
 
  두번째 위기는 알 이티하드 원정 패배였다. 홈으로 돌아와 부랴부랴 치른 부산과의 경기에서도 졌다면 팀에 심각한 슬럼프가 올 수 있었다. 게다가 적장 안익수 감독은 서울을 구석구석 너무나도 잘 아는 상대였다. 그런 상대를 맞아 김동진, 문기한, 강정훈 등을 기용하며 위기를 벗어난 것은 인상적이었다. 이는 ‘리그 정상급의 팀이라면 리그에서 연패해서는 안 된다’는 조건을 충족시킨 것이기도 했다.
 
 
 
  마지막 위기는 수원전 패배였다. 경기의 비중 만큼이나 수원전 패배는 팀에 좋지 않은 후유증을 가져온 것이 분명했다. 훌륭한 경기 내용을 보여주고도 억울하게 패배해 타격은 더욱 컸다. 파장은 만에 하나 있을지 모르는 ‘데얀 없는 PO’를 대비한 플랜 B를 전반에 가동했다가 무위로 돌아간 인천전 무승부까지 이어졌다. 그 위기를 딛고 2경기 연속 다득점 승리로 끝내 정규리그 3위를 차지한 과정은 모두가 본 그대로다. 이 세번의 위기를 모두 잘 넘겼다는 것은 ‘감독 최용수’에게 결코 만만치 않은 리그 운영 능력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구단은 최용수에게 무엇을 해주었나

  이러한 평가를 두고 최용수 감독‘대행’에게 지나치게 후한 평가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2008, 2009, 2010 시즌 모두 정규리그 3위 안에는 들었으니, 원래 3위 안에는 들던 팀에서 3위한 것이 무어 그리 대단하냐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앞의 세 시즌 동안 우리가 7라운드까지 14위로 마친 적은 한번도 없다. 결론적으로 최용수의 올 시즌 리그 운영 능력은 기대 이상으로 훌륭했다는 것이다. 오히려 되짚어볼 점은 올 시즌 우리의 얇은 스쿼드와 그에 대한 구단의 태도다.
 
 

  먼저 올 시즌 개막 전, 그리고 시즌 중에 나간 선수들을 꼽아보자. 김치우, 최효진, 정조국, 김진규, 거기에 제파로프까지, 쟁쟁한 핵심 선수들이 나갔다(이외에도 나간 선수들은 더 많다). 공수, 미드필드에 걸쳐 핵심선수들이 나갔는데 이뤄진 보강이라고는 몰리나와, 시즌 전반기에는 제대로 나오지도 못한 김동진 뿐이었다. 어경준은 승부조작 연루로 퇴출됐다. 시즌 중에 이뤄진 보강은 단 한 건도 없었고, 최용수 감독이 직접 영입을 요청한 사샤는 10만 달러를 아끼려다 그랬는지, 메디컬 체크에서 정말 흠이 있었는지 모르겠으나 어쨌든 결국 영입되지 않았다. 중앙수비는 아직은 경험이 부족한 김동우가 메웠고, 아디는 여전히 나이를 잊은 훌륭한 기량을 보여주기는 했지만, 만약 그가 부상이라도 당했다면 올 시즌은 참으로 끔찍한 결과가 발생했을 것이다(아디의 나이에 부상을 당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 나이에는 한번 부상당하면 회복도 매우 더디다. 구단 프런트는 올 시즌 아디가 큰 부상이 없었다는 점에 대해 정말 운이 좋은 줄 알아야 할 것이다).
 
 

  반면 시즌 중에 전열을 이탈하는 선수들이 발생하면서 가뜩이나 얇은 스쿼드는 더욱 얇아졌다. 지난 시즌 30경기를 넘게 뛰었던 하대성은 올 시즌 부상과 회복을 반복했다. 언론은 서울의 핵심 선수가 데얀인 것처럼 말하지만, 경기장에서 매번 경기를 지켜보는 팬이라면 진짜 핵심 선수는 하대성이라는 사실을 잘 알 것이다. 현대축구에서 홀딩 미드필더가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하면 하대성을 핵심 선수라고 하는 데에는 전혀 무리가 없다. 최용수 체제에서 하대성이 출전한 리그 경기의 성적은 10승 4무 2패다. 알 이티하드전, 수원전, 울산전까지 우리가 넘지 못한 중요한 승부처에서 하대성은 모두 피치에 없었다.
 
 

  여기서 탓해야 할 것은 하대성이 아니다. 열심히 뛴 선수가 무슨 죄인가. 그렇다고 감독을 탓할 일도 아니다. 비판받아야 할 것은 하대성이 없으면 그에 필적한 대체자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얇은 스쿼드를 방치한 구단 프런트다. 정말로 아챔에서 우승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면 더블 스쿼드를 돌릴 수 있도록 이런 포지션은 당연히 주전 경쟁이 될 정도의 선수를 보강했어야 옳다. 사샤 건도 마찬가지다. 나는 지금도 사샤 영입만 잘 성사되었더라면 아챔 4강 진출에 실패하는 일도, 울산전에서 그렇게 허무하게 패배하는 일도 없었으리라고 생각한다. 비슷한 생각을 가진 팬들이 많을 것이다.
 
 

  돌아보면 시즌 중 전열에서 이탈한 선수는 하대성 뿐만이 아니었다. 물론 선수의 부상은 늘 있는 일이고, 감독은 그것까지 고려해서 팀을 운영할 책임이 있다. 그러나 포커를 치는데 가뜩이나 돈까지 넉넉한 상대방은 패를 일곱 장 들고 포커를 치는데 나는 여섯 장을 들고 쳐야 하고 그나마 세 판에 한 판은 다섯 장을 들고 쳐야 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김동진, 최태욱, 문기한, 고명진 등이 장기 부상을 당하거나 수시로 전열에서 이탈했는데 대체할 멤버는 마땅히 없었다. 결과가 좋아서 큰 비판을 받지 않았지만 ‘왜 OOO과 같은 선수가 선발로 나오지?’라는 의문을 가졌을 팬들 앞에서 감독의 고충은 오죽했겠는가. 선수로 지도자로, 밥먹고 축구만 30년을 한 사람이라면 선수의 ‘클래스’는 누구보다도 잘 알아보기 마련인데 말이다.
 
 

  중앙수비수와 수석코치 보강이 이루어졌다면 결과가 달라졌을 시즌

  프런트에 대한 이러한 비판은 무작정 선수 영입에 막대한 자금을 풀어 팬들의 눈을 즐겁게 하는 ‘자선사업’을 해달라는 주장이 아니다. 다만 이번 시즌 노력한 만큼의 결과를 얻기 위한 최소한의 투자조차 외면하고, ‘감독이 된 독수리’를 이슈 메이킹 재료로는 한껏 활용하면서도 실상은 선수도 코칭스태프도 제대로 보강해주지 않은 채, 마치 ‘어디 너 혼자 잘해보시든가, 혼자서도 잘하면 대행 꼬리표 떼어주고, 못하면 여지 없고...’라는 것처럼 방치했던 구단의 태도를 나무라는 것이다.
 
 

  올 시즌을 봐온 팬들이라면 보강의 우선순위는 다들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스쿼드는 중앙수비수가, 코칭스태프는 수석코치의 보강이 절실했다. 그 다음 조금 더 욕심을 부리자면 지금보다 좀 더 경쟁력 있는 하대성의 백업멤버가 필요했다. 시즌 중에 세번째까지는 현실적으로 힘들더라도 앞의 둘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했다. 통상 스트라이커 출신 감독들은 감독으로 성공하기가 수비수 출신보다 쉽지 않은데, 이는 본인이 공격수 출신이다 보니 수비 전술을 조련하는 법을 터득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격수 출신으로 성공한 감독들은 수비 조련에 있어서는 능력있는 코치진의 도움을 받았거나, 감독으로서 성공하기까지 초반의 시행착오가 길었거나, 대부분 이 둘 중 하나다. 쉬운 예를 들자면 수원 차범근 감독의 2008 시즌 성공에는 이임생 코치가 수비 조련에 기여한 공로가 컸고, 포항 황선홍 감독은 부산에서 3년 넘게 시행착오를 겪고서야 드디어 올 시즌 포항에서 빛을 보고 있다.
 
 

  최용수 감독은 전형적으로 수비 코치의 도움이 필요한 케이스였다. 스트라이커 출신임을 떠나서라도 그가 초보 사령탑이라는 점에서 유능한 코치진의 보좌는 거의 필수적이었다. 그러나 구단은 시즌 끝까지 ‘대행’ 꼬리표 떼는 일을 망설이며 코치진 보강에도 소극적이었다. 감독‘대행’이 있으니 ‘수석코치’를 데려오기란 애매했겠지만, 6월쯤 대행 꼬리표를 일찌감치 떼고 수비 조련에 능력있는 코치를 ㅡ 아마추어에 몸담고 있는 지도자일지라도 ㅡ 수석코치로 영입했다면 올 시즌 결과가 많이 달라졌으리라는 예상은 혼자만의 생각일까?
 
 

  실제로 현재 서울의 코칭스태프 구성을 보면 ㅡ 코치들께는 미안한 말이지만 ㅡ 다분히 급조된 조합이다. GK코치와 피지컬 트레이너를 제외한 두 명의 코치 중 김성재 코치는 황보관씨가 경질되면서 2군에서 급히 올라왔다. 이원준 코치는 U-18팀을 지도하다가 여름에야 코치진에 합류했다. 귀네슈-이영진-최용수나 빙가다-안익수-최용수 코칭스태프를 기억하는 팬들에게 이 조합은 완곡하게 말해 대단히 낯선 조합이다. 혼자서 모든 것을 다 잘해낼 수 있는 감독은 없다. 그런 점에서 올 시즌 ‘초보감독 최용수’가 한계를 보인 부분들이 있다고 한들, 그것을 최용수 혼자만의 한계이자 책임으로 돌릴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수석코치 복귀도, 해외유학도 정답은 아니다

  나는 이 글에서, 비록 최용수 감독이 당연히 부족한 점도 있지만, 여러가지로 좋은 감독이 될 수 있는 자질을 갖춘 지도자임을 강조하고자 노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마 이 글을 읽고 난 팬들의 반응은 “그래, 잠시 잊고 있었지만 최용수 감독이 올 시즌 공로가 많은 것은 인정하고 높이 평가한다. 그러나 다음 시즌에는 외국인 감독을 보았으면 좋겠다”는 쪽이 우세할 것이다. 패배의 여운이 진한 이 시점에서, 그리고 귀네슈와 빙가다가 보여준 축구가 여전히 우리의 뇌리에 강하게 남아있는 상황에서 그러한 반응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독 최용수’가 이렇게 지도자로 제대로 꽃피워보지도 못하고 자리를 내놓아야 한다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국적인 문화에서 사실상 감독이나 다름 없는 감독‘대행’의 위치에서 팀을 33경기나 지휘한 사람이 다시 수석코치가 되기란 쉽지 않다. 본인에게는 굴욕에 가까운 일일 수 있고, 새로 외국인 감독이 부임한다 한들 그 외국인 감독은 ‘최용수 수석코치’의 존재를 매우 불편하게 여길 수도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감독의 견제심리로 야구 SK와이번스에서의 김성근-이만수 같은 관계가 형성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그렇다고 해서 ‘최용수 감독대행은 선진축구를 더 공부하기 위해 구단의 전폭적인 지원하에 2년간 축구 유학을 떠나기로 했다’는 식으로 ‘모양새’를 갖추어 코칭스태프에서 제외한다면 그것은 더 문제다. 말이 좋아 축구 유학이지, 그 본질이 토사구팽임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귀네슈 감독도 2009 시즌에 정규리그 3위ㅡ6강 PO 탈락이라는 성적표를 받아들고 재계약에 실패했으니 일견 잣대는 공정한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적어도 귀네슈-빙가다 이전의 조광래-이장수 두 감독보다는 훨씬 좋은 경기 내용과 성적을 보여주었고, 심지어 황보관씨도 구단 역사에는 ‘제9대 감독 황보관’이라고 기록될 마당에, 배 열두 척을 넘겨받아 팀을 3위까지 이끈 최용수는 그 노고에도 불구하고 클럽 역사에 ‘제10대 감독 최용수’가 아닌 ‘감독대행’으로만 남는다면 이보다 불공평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더욱이 정규리그 3위ㅡ6강 PO 탈락이라는 결과가 ‘책임질’ 결과라면, 정말 책임져야 할 사람은 따로 있는데 말이다. 
 
 

▲ 최용수 감독은 이미 올해 감독대행의 신분으로 무려 33경기를 지휘했다.
그런 그가 다시 수석코치의 위치로 돌아가 트레이닝복을 입는 것은 말처럼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축구 유학'을 보내는 모양새가 정답이 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 뿐만이 아니다. 리그 승률 65%, 통산 승률 60%를 모두 넘겨도 감독직에서 잘리는 클럽이라면, 이는 장차 감독 후보들에게 FC서울 감독직을 ‘독이 든 성배’로, FC서울은 ‘토사구팽 구단’으로 인식하게 하는 부정적 시그널을 주기에 충분하다. 이런 정책은 첼시나 레알 마드리드 정도의 위상을 가진 팀이라야 (혹은 감독 교체를 밥먹듯이 하는 아랍권 클럽들이나) 감당할 수 있는 것이다. 더 본질적으로는, 무려 황보관씨를 감독으로 선임했던 구단이 외국인 감독을 임명한다 한들 정말 유능한 인물을 영입할 수는 있는 것인지, 그 감독이 내년 시즌 선수를 파악하고 K리그에 적응하느라 초반에 상당한 시행착오를 겪지는 않을지 ㅡ 멀리 갈 것도 없이, 귀네슈 감독은 부임 첫 해인 2007 시즌에 컵대회의 위상을 오해한 나머지 컵대회 우승에 전력을 다하는 실수를 한 적이 있다 ㅡ 에 대한 의구심은 전혀 해소되지 않았다(이런 점에서 내가 아는 한 서울팬은 최용수를 정식감독으로 선임하지 않고 외국인 감독을 영입하려는 시도를 “로또에 당첨되려고 직장을 그만두는 격”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적절한 비유라고 생각한다). 또한 2003 시즌 이후 가장 많은 리그 44라운드를 치뤄야 하는 내년 시즌에 이런 얇은 선수층을 그대로 두고는 최용수 감독이든 외국인 감독이든, 어느 누구도 끝까지 리그 우승경쟁을 펼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기에, 과연 감독 교체의 명분이 있는 것인지는 더욱 의문이다.
 
 
  마지막으로, 최용수를 위한 변명 
 
  끝으로, 한 남자로서, 인간으로서 이번 시즌 최용수 감독을 보며 느꼈던 ‘짠한’ 마음 한자락을 회고하면서 글을 맺는다. 늘 트레이닝복을 입다가 지휘봉을 잡은 뒤로는 경기장에나 기자회견장에나 항상 반듯한 정장을 입고 나오는 ㅡ 그러나 그 정장이 비를 맞든, 구겨지든 아랑곳하지 않고 열정을 다하는 ㅡ 최용수의 모습은, 오랫동안 코치로 있었던 그가 선수들에게 코치가 아닌 감독으로서의 자신의 포지션을 재인식시켜야 하는 상황을 이해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다른 한편으로, 그의 인터뷰를 볼 때면, 가끔 촌철살인의 멘트로 기사거리를 만들기도 했지만, 때로는 아직도 감독‘대행’의 신분에 있기에 ‘윗분’들의 ‘심기’를 거스르지는 않을까 극도로 조심하는 모습이 엿보이기도 했다.
 
 

  나이 어린 팬들에게는 와닿지 않을 수 있겠지만, 그런 ‘애매한’ 위치에 있을 때의 처신이 어느 정도로 어려운지는, 사회 생활을 조금이라도 해본 사람들이라면 금방 와닿는 일이다. 선수 시절 커리어로 보나 코치 수업 기간으로 보나 비슷한 황선홍, 유상철 감독은 모두 ‘감독’으로 자리잡았는데, 본인은 기대치가 높은 명문 구단에서 위기 상황에 갑자기 팀을 맡는 바람에 충족해야 할 기준은 높고 신분은 불안정한 처지에서 얼마나 고충이 컸을지는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런 고충을 겉으로는 전혀 드러내지 않으면서 묵묵히 팀 성적을 끌어올리는데 매진했다는 사실은 최용수를 더욱 높이 평가하게 만드는 점이고, 그래서 나는 ‘최용수를 위한 변명’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어제 패배 후 기자회견에서도 최용수 감독은 모 감독처럼 선수 탓도 하지 않고 “모든 것은 부족한 나의 책임이다”라고 스스로 책임을 떠안았다. 올 시즌 내내, 다른 누구의 탓도 할 수 없었던 특수한 위치에서 오직 팬과 선수들만 보고 최선을 다해온 그의 마지막 답변은 “향후 거취에 대해서는 구단으로부터 들은 바 없다”는 것이었다. 이제는 구단이 팬들과 최용수 감독이 모두 납득할 수 있는 답변을 해야 할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