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3월 16일 금요일

김호곤을 위한 변명 (2004. 8. 23.)

* 이 글은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축구가 끝난 뒤(2004. 8. 23.) 한 인터넷 축구 커뮤니티에 썼던 글입니다. 지난 2011 시즌 K리그 플레이오프에서 '철퇴축구'라는 별명을 얻게 된 것을 시작으로, 올 시즌 초반 4전 전승으로 리그 1위에 오르면서 김호곤 감독의 지도력이 재조명받고 있는 시점에 감회가 깊어 다시 올려봅니다.


김호곤을 위한 변명

ㅡ 김호곤 감독은 실적에 걸맞는 평가를 받을 자격이 있다




"이 장문의 글은 그래서 '김호곤을 위한 변명'이자, '제2, 제3의 김호곤들'을 위한 변명이기도 하다. 김호곤 감독이 이런 비난을 받을진대, 하물며 훗날 '이민성 감독'이나 '김상식 감독'이 나온다면, 그들이 단 한 경기라도 패할 때마다 받는 비난은 오죽이나 하겠는가. 김호곤 감독이 이번 올림픽대표팀 감독 임기중 거둔 성과물은 단언컨대 역대 어느 국내 감독보다도 뛰어난 것이며, 그는 그에 걸맞는 평가를 받을 자격이 있다. 중국이나 이란이 그토록 갖고 싶어해도 갖지 못한 것을 어찌하여 우리는 발로 차고 던져버리기에 바쁜가?" ㅡ 본문 중에서




  보통 패장(敗將)을 변호하는 것은 대단한 용기를 필요로 한다. 전선(戰線) 뒤의 사람들이 패배의 희생양을 찾고 있을때 앞장서서 패장을 변호하는 일은 목숨을 걸어야 할만큼 위험한 일이라는 것을 역사는 보여주고 있다. 그 중 가장 잘 알려진 사례는 아마도 사마천(司馬遷)일 것이다. 흉노에게 패하여 투항한 이릉(李陵)을 홀로 나서 변호하던 사마천은 한(漢) 무제(武帝)의 진노를 사서 궁형(宮刑 : 남자의 고환을 제거하는 형벌)에 처해졌다. 어쩌면, 패장을 변호하다가 목숨을 잃은 숱한 문관(文官)들에 비해 사마천의 경우를 사람들이 더 잘 알고 있는 것은, 그나마 궁형으로 목숨은 부지한 사마천의 예가 오히려 운이 좋은 편에 속하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이 글은 '승장(勝將)' 김호곤 감독을 변호하기 위해서 쓰여졌다. 아니, 승장을 변호하다니!!  승장이라면 당연히 칭찬을 받고 환호성을 들어야 맞지 않은가?  불행히도 축구팬들의 여론은 그렇지 않은것 같다. 올림픽 대표팀 부임 초기부터 김호곤 '감독'이라는 호칭은 고사하고 '김호곤'이라는 본래의 이름 석자를 팬들에게 듣는 것조차 감사해야 할 정도로, '기모곤', '호고니', 심지어는 '호로곤', '무뇌곤' 등으로 불려야 했던 그는, 이제 한국 올림픽축구 사상 최초로 조별 리그를 통과해 8강에 진출한 감독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8강전 한번의 패배로 또다시 팬들의 십자포화에 직면하고 있다.


  그래서, '김호곤을 위한 변명'을 시작하려는 나는, 그가 엄연한 '승장'임에도 불구하고, '패장'을 변호하다가 희생된 저 숱한 문신들의 예를 떠올릴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이 '무뇌곤'이라 부르는 감독을 희생양으로 삼고 있는 무례한 '여론'은, 일면식도 없는 감독을 제 일처럼 나서서 변호하는 한 축구팬을 또다시 희생양으로 삼아 몰아내려 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패장을 변호하다가 희생된 숱한 문신들이 이유없이 패장을 변호하지 않았을터, 하물며 패장도 아니며 56년만에 가장 좋은 결과를 얻어낸 장수는 그에 합당한 평가를 얻을 자격이 있다. 이 글은 그런 너무나도 '당연한' 상식을 환기하기 위함이다.



  김호곤 감독은 과연 '불투명한 선임 과정'에 의해 감독이 되었나?

  김호곤 감독에 대한 부당한 평가는 김호곤 감독의 올림픽대표팀 감독 선임 당시부터의 부정적인 선입관에 기인하는 바가 적지 않다. '안티 김호곤'들이 김호곤 감독 체제 초기에 김호곤 감독을 비난한 근거는 세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 K리그에서 부진한 성적을 거둔 감독이 불투명한 선임 과정을 거쳐 대표팀 감독으로 선정되었다는 주장. 둘째, 브라질과의 A매치 감독 대행 때의 후반전 '교체 쇼', 셋째, 네덜란드 원정 후 공항에서의 '히딩크 그 XX' 막말 파문.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 보면 이상을 근거로 한 김호곤 감독에 대한 비난은 사실 형평을 잃고 있는 것이며 기실 히딩크 감독 시절 스포츠신문들이 보여준 행태를 답습하고 있는 것이기까지 하다. 먼저 김호곤 감독의 대표팀 선정 과정이 과연 '불투명'했는지를 보자. 2002년 11월 김호곤 당시 부산 아이콘스 감독이 올림픽 대표팀 감독으로 선정될 당시, 대한축구협회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팬들의 56%가 국가대표팀 감독과 올림픽 대표팀 감독의 분리를 희망했고, 협회는 이러한 여론을 참고하여 올림픽 대표팀 감독을 먼저 선정하기로 결정했다.


  여기서 생각해야 할것은 과연 대한축구협회가 국가대표팀 감독과 올림픽대표팀 감독을 모두 1급의 외국인 지도자로 쓸만큼 재정이 여유로운가 하는 점이다. 히딩크와 같은 세계 레벨의 명장을 2년간 감독으로 초빙하는 데에는 적어도 4백만불 이상의 돈이 필요하다. 히딩크와 같은 'S 클래스' 명장은 아니더라도 지명도가 있는 A급 외국인 감독을 데려오는 데에도 연간 1백만불은 준비해야 한다. 월봉 2만불을 받던 본프레레 감독과 계약하는 데에도 KFA는 그가 종전에 받던 연봉의 세배인 연간 70만불을 제시해야 했다. 그 이전에 브뤼노 메추, 루이스 펠리페 스콜라리를 어떻게 놓쳤는지는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다. 여러 '핑계'가 따라붙었지만 결국 본질적인 이유는 '돈이 곧 명예'인 프로의 세계에서 KFA가 명장의 가치에 합당한 금액을 제시할 여력이 없었다는 데에 있다.


  그래서, 국가대표팀 감독과 올림픽대표팀 감독 중 한 자리는 국내 지도자를 쓸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KFA는 올림픽대표팀 감독에 국내 지도자를 기용하기로 한 것이다. 올림픽축구가 끝날 때까지 계속된 '안티 김호곤'들의 속모르는 외국인 감독 타령과는 달리, 현실적인 여건은 국내 지도자를 쓸수 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물론 '외국인 지도자 타령' 외에도 당시 K리그 9~10위권으로 쳐진 부산을 이끌던 김호곤 감독이 과연 올림픽 대표팀 감독으로 적임자냐 하는 문제 제기도 있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런데, 김호곤 감독이 적임자가 아니라면, 과연 누가 감독이 되어야 했을까?  2002년 당시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던 감독들을 한번 꼽아보자. 조광래?  '유망주들의 무덤'이라고 불리던 안양의 감독이던 그가 U-23 대표팀에 적합한 인물이었을까?  김호, 이회택?  국가대표팀을 이끌고 월드컵까지 나가본 감독이 '디그레이드(degrade)'되어 올림픽 대표팀을 맡으려고 하겠는가?  더욱이 김호 감독은 당시 KFA 지도부를 불신하여 대표팀에 참여하지 않으려고 한 인물이고, 이회택 감독은 '90 이탈리아 월드컵이 끝난 후 '두번 다시 대표팀은 맡고 싶지 않다'고 엄청난 압박감에 시달렸음을 토로했던 인물이다. 최순호?  서포터즈가 물러나라고 매 경기 현수막을 걸던 그 감독?  최윤겸?  국제대회 경험 하나 없는 그를 클럽에서의 일천한 경력을 보고 일약 U-23 감독으로 뽑아야 했을까? 


  이렇게 한명 한명 꼽아보면 당시 축협은 대단히 좁은 인재 풀(pool)에서 사람을 고를 수 밖에 없음을 알 수 있다. 남은 후보들 중 박성화 감독은 U-19 대표팀에 전력하겠다는 의사를 피력했고, 허정무 전 감독은 그후 기술위원회에 들어가는 과정에서도 막판까지 고사했듯이 당시에도 올림픽대표팀을 맡을 의사가 전혀 없었다. 그렇다면 김호곤 감독 외에 누가 감독으로 선임될 수 있었을까?


  아마도 팬들의 비난을 받지 않고 감독으로 선임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 있다면 그 무렵 막 선수 생활을 끝내고 지도자 수업을 선택한 황선홍 정도였을 것이다. 그나마도 지도자로서의 능력을 인정받아서가 아니라 선수 생활 당시의 후광 때문에. 그러나 데샹처럼 클럽 감독을 맡는 것도 아니고, 30대 초, 중반의 '선수 시절 영웅'을 곧바로 자국 축구협회의 각급 팀에 데려다 쓰는 것은 동구권의 축구 후진국들이나 하는 일이다. 후술하겠지만 국내 감독에 대한 불신과 비난은 이처럼 좁은 인재풀에서 감독을 골라야 하는 어려움을 더욱 심화시킬 뿐이다.



  히딩크 시절 스포츠신문들의 행태를 답습하는 '안티 김호곤'들

  이처럼 김호곤 감독의 선임이 '연줄'에 의해 '불투명하게' 이루어졌다는 것은 근거가 없음을 알 수 있다. 축구판의 연고주의가 그간 많은 부조리를 양산해왔음은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때때로 이 연고주의에 대한 의심은 근거없는 억측을 낳아왔음 또한 부정하기 어렵다. 일례로 '98 프랑스 월드컵 본선에서 차범근 감독이 김도훈을 중용하자 항간에는 '차범근 감독이 학연과 종교 때문에 김도훈을 기용했다'는 소문까지 나돌았다. 그러나 고려대 출신에 기독교 신자인 차범근 감독과는 달리 김도훈은 연세대 출신에 불교 신자다.


  부산아이콘스를 하위권으로 추락시킨 감독이 어떻게 올림픽대표팀 감독으로 '영전'하느냐는 질타도 근거가 불분명하기는 마찬가지다. 물론 최종순위로 드러난 성적이야 전만 못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정작 2001년과 2002년에 부산의 경기를 주목해서 봤던 팬들은 부산의 추락은 감독보다는 주축 선수들을 대거 이적시킨 프런트의 책임이 더 크며, 부산이 경기에서 지기는 했지만 화끈한 공격축구로 볼만한 경기를 했다고 회고한다. 그 '공격축구'는, 팬들이 돌아오는 K리그를 만들기 위해 골을 많이 넣는 축구를 하자는 K리그 지도자들간의 일종의 암묵적 합의에 의해 이루어진, 다시 말해 팬들의 기대에 부응하여 나타난 것이다. 골을 많이 넣는 축구를 해달라고 할때는 언제고 뒤돌아서는 무능한 감독이라고 질타한다면, 어느 감독인들 리그에서 '대잠금'의 유혹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  
 
  김호곤 감독 부임 초기 비난 여론의 주된 이유가 된 나머지 이유들도 이 참에 짚어보고 넘어가자. 브라질과의 A매치에서 감독대행을 맡아 보여준 후반전 '교체쇼'는 분명 부적절한 것이기는 했다. 상대는 우리를 '월드컵 4강팀 한국'으로 인정하고 최선을 다한 경기를 했으며, 더욱이 자갈로 감독의 1백승 달성을 위해 어떻게든 이겨보려는 움직임이 역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한 경기를 이기지 못해 한국이 세계 최강이 되지 못한 양 김호곤 감독을 비난한 것은 경기 이면의 정치적 의도에 그대로 놀아나는 것 밖에는 안된다. 2002년 11월 11일에 개최된 한국ㅡ브라질의 A매치가 당시 대선 레이스에서 '월드컵 거품'이 빠져 지지율 하락세에 있던 정몽준 후보가 다시 한번 축구붐을 등에 업기 위해 추진한 작품이라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교체쇼'로 인해 '세계 최강'이 될 기회를 놓쳤다는 비난은 과도한 것이며 이는 김호곤 감독 본래의 임무인 '올림픽대표팀 감독'과도 연결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네덜란드 원정 후의 '히딩크 그 XX' 발언이 비난의 대상이 된 것도 문제가 있다. 당시 히딩크의 아인트호벤은 예정에 없이 경기 장소를 인조잔디로 변경해 결국 선수 보호 차원에서 아인트호벤 U-21팀과 한국 올림픽대표팀간의 경기가 취소되었고, 이것이 발단이 되어 '히딩크 그 XX'라는 돌출발언이 나왔으나, 엄밀히 말해 이는 기사화되지 말았어야 할 부분이다. 하이에나처럼 유명인의 말실수를 물고 늘어져 '파문'으로 확대하는 스포츠신문의 행태를 한두번 보았는가. 경기 외적인 부분에서 감독을 물고 늘어져 가십거리로 만드는 것은 엘리자베스를 대동하고 다니던 히딩크를 물어뜯던 스포츠신문들로부터 익히 잘 보아오지 않았는가. 그토록 비난해 마지 않던 스포츠신문의 행태를 축구팬들이 답습한 이 아이러니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이기면 선수발, 지면 감독탓 : 김호곤은 정말 '무전술 감독'인가


  김호곤 감독 부임 초기의 비난들에 대한 이와 같은 반박에 대해 '안티 김호곤' 축구팬들은 "우리는 그의 사소한 실수 때문에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무전술적 경기 운영 때문에 비난하는 것"이라고 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김호곤 감독은 정말 무전술 감독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그렇지 않다'고 단언할 수 있다. '무전술 감독'이라는 비난을 퍼붓는 팬들의 큰 착각 중 하나가 우리 선수들의 실력이면 아시아권 팀들은 그냥 뛰어도 이긴다는 것이다. 미안하지만 축구란 그런 것이 아니다. 11명의 선수가 전술에 따른 유기적인 움직임을 보여주지 못하고 각자 따로 놀게 되면 제아무리 개인 기량이 우수한 '올스타'를 모아놔도 그 팀은 패하게 되어 있다. '그냥 뛰어도 이길' 팀들이라면 한국 국가대표팀은 왜 베트남과 오만에 패하고 몰디브, 요르단과 비겼겠는가?


  김호곤 감독은 올림픽대표팀 감독 취임 이후 80명에 가까운 선수들을 올림픽 대표팀에 불러 옥석을 가렸고 그 전과정을 통해 발견되는 것은 감독이 일관된 전술적 효용 가치에 따라 선수를 뽑았다는 것이다. 일례로 '무뇌적 전술'로 '선수발'에만 의지해 명성있는 선수를 선발했다면 올림픽대표팀의 최전방 공격수는 조재진이 아니라 정조국이 되어야 했을 것이다. 수비라인에서도 청소년대표팀에서부터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여효진, 임유환이 뽑혀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정조국은 최전방에서 폭넓은 움직임으로 수비수를 달고 다니며 90분간을 감당할 수 있는 선수가 아니었고, 여효진 역시 장신인데 비해 협력수비와 맨마킹 모두에 있어 조병국보다 부족해 탈락했다.


  김호곤 감독을 '무전술 감독'이라 부르는 이들이 내놓는 또 한 가지 논거는 아시아 최종예선을 중도에 일회성 합류를 한 박지성, 이천수에 힘입어 치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이야말로 그들이 올림픽대표팀에 얼마나 관심이 없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천수는 올림픽대표팀의 남아공 및 유럽 전훈에도, 2003년에 여러 차례 실시된 강화훈련에도 함께 했던 선수다. 박지성에 대해서는 감독은 팀을 만드는 내내 박지성의 역할을 염두에 두고 구상을 그려놓고 있었다. 어느날 '느닷없이' 합류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김호곤 감독에 반대하는 팬들 뿐이었다. 평소에 합숙훈련하지 않았던 선수들을 이용해 경기에 승리했다고 해서 무전술 감독이라는 평가를 받는다면, 그 장기레이스를 펼치는 남미 지역예선에서는 호나우두의 힘을 빌지 않다가 월드컵 본선에서는 호나우두 '덕분에' 우승한 스콜라리야말로 '무전술 감독'의 전형이요 '선수발'의 덕을 본 '세상에서 가장 운좋은' 감독일 것이다!!



  지역예선, 평가전, 그리고 올림픽 본선까지 : '무뇌 감독'이 거두기에는 너무나도 좋은 성적

  무엇보다도 김호곤 감독이 취임 후 올림픽대표팀을 1년 10개월간 이끌면서 거둔 성적은 '무뇌 감독'이 거두기에는 지나치게 좋은 성적이다. 공식 경기 총 18승 6무 5패를 기록한 김호곤호는, 아시아 최종예선 전에는 10승 2무 5패를 기록했고, 이 전적 가운데에는 네덜란드 U-21을 그들의 안방에서 1 - 0 으로 누른 것이나, PSV아인트호벤과 2 - 2 무승부를 거둔 것도 포함되어 있다. 아시아 최종예선 중국전을 시발로 해서는 엊그제 파라과이에게 패할 때까지 14경기 연속 무패(8승 6무)를 기록했고, 특히 아시아예선을 무실점에 전승으로 통과한 것은 아시아 축구 역사상 몇 안되는 '진정한 당대 최강팀'으로 불리는 1989년의 이회택호(월드컵 아시아예선을 단 1실점으로 통과)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뒤늦게 '상대가 만만했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당시에 그런 평가를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중국, 이란과 한조에 속하자 아시아 축구계에서도 국내에서도 한국의 조는 '죽음의 조'로 꼽혔고, 중국의 U-23 대표팀은 결과적으로야 변변찮은 성적으로 패퇴했지만 최종예선 개막 전까지만 해도 사상 처음으로 유학파들이 대거 참여한 '플래티넘 세대'라며 기세를 올렸다. 뿐만 아니라 한국의 축구팬들은 테헤란 원정을 앞두고 얼마나 이란의 모발리를 걱정했던가!!


  이 팀들을 무실점 전승으로 제압하고 올림픽 본선에 진출하는 과정에서의 감독의 노력은 결코 '선수발' 한 단어로 간단히 무시하고 지나갈 성질의 것이 아니다. 한국의 전력에 비추어 볼때 아시아 예선 통과가 대단한 업적이라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감독은 가진 역량을 최대한 발휘해 제 몫을 했다는 뜻이다. 일례로 2003년 초에 실시한 남아공 고지대(해발 1900m)에서의 훈련이나 중국전 직후 쿤밍(昆明)에서 실시한 고원 적응 훈련은 모두 테헤란 원정을 승리로 이끈 원동력이 되었다. 한때 '골넣는 유전자가 없는 선수를 기용한다'는 비난까지 받았고 특히 정조국 팬들이 대거 '안티 김호곤'이 되는 계기를 제공했던 조재진은 고비마다 중요한 골을 터뜨리며 팀을 아테네에 진출시켰다. 아시아예선을 앞두고 코칭스태프가 상대팀을 분석하는 태도도 전에 없이 열의있는 것이었다. '무뇌 감독'이 이 모든 일들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올림픽 본선에서도 마찬가지다. 8강전 파라과이전에서의 용병술은 분명 적절치 못한 부분들이 있었고 이는 엄연히 감독의 책임이다. 그러나 그 이전까지의 김호곤 감독의 용병술은 결코 나쁘지 않았다. 감독 '덕분에' 올라간 것이 아니라 감독에도 '불구하고' 올라간 케이스라고?  한국 선수들의 개인 기량이, 딕 아드보카트라는 존재에도 '불구하고' 유로 4강에 진출한 네덜란드의 경우만큼 그리스, 멕시코, 말리에 비해 압도적이었다고 생각하는가?  조병국을 주축으로 한 안정된 스리백을 왜 본선에 가서는 흐트러 놓았느냐고 아우성치는 팬들이 있다. 그런데 이 흥분한 팬들은, 조병국이 대회 직전에 부상을 당해서 대회 첫경기 당시에는 아직도 회복중이었다는 사실은 어느새 까마득히 잊어버렸다.



  성난 팬들이 잊어버린 사실들 : 아무도 불운은 기억하지 않는다


  56년만의 올림픽 본선 조별리그 통과와 8강 진출을 달성한 이 감독에 대한 쏟아지는 비난은, '무전술'과 '선수발'에 이어 '운발'이라는 데까지 연결된다. 기실 올림픽 본선에서 한국은 행운이 꽤 따르기는 했다. 그리스전에서, 멕시코전에서, 골대를 맞춘 슈팅 중 하나만 들어갔어도 한국은 8강에 오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운이 따랐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전적으로 '운'에만 의지해 모든 것을 설명하는 것은 결과론에 불과하다. 패배에 흥분한 팬들은 우리에게 따랐던 행운은 기억하지만 감독과 선수들이 극복해야 했던 불운은 이미 기억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전에서의 김치곤의 억울한 퇴장과 주심의 부당한 PK 판정이 없었다면 한국은 멕시코전이 끝난 직후에 이미 8강 티켓을 손에 넣고 말리전에서는 여유있게 이정열, 남궁도, 김지혁을 교체해주며 주전의 체력을 비축하는 한편 경기 감각을 가다듬었을 것이다. 말리전에서 은디아예의 첫골에 앞선 핸들링 반칙이 제대로 잡혔더라면 한국은 조별 예선 최종전에서도 벼랑끝에 몰리지 않았을 것이다.


  더욱 거슬러 올라가면 정말 '본질적인' 불운 두 가지가 자리잡고 있다. 하나는 사스(SARS) 여파로 인해 2003년에 이미 끝났어야 할 올림픽축구 최종예선이 2004년 봄으로 늦춰진 것이다. 일부 팬들은 인정하지 않을지도 모르고 또한 선수들에게 미안한 말이기도 하지만, 몇몇 포지션에서는 '아시아용 선수'와 '세계 무대용 선수'는 따로 있다. 아시아 레벨에서는 통하는 일정한 수준의 힘과 높이를 갖추고 있으나 유럽팀을 상대로는 기량이 미달하여, 지역예선을 편하게 통과하기 위해서는 기용할 수 있지만 본선에서는 정작 거의 통하기 어려운 선수들이 있는 것이 현실이다. 또한 와일드카드의 기용은 지역예선에서는 금지되어 있다. 만약 이번 아테네 올림픽 축구의 아시아 예선전이 정상적으로 치뤄졌다면 김호곤 감독은 지역예선을 결절점으로 팀을 재정비할 기회를 좀더 일찍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다른 하나의 '본질적인' 불운은 와일드카드에 있다. AFC가 아시안컵 개최 시기를 여름으로 당겨 올림픽과 맞물리게 한 것은 2004년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ㅡ 다음 대회부터 아시안컵은 올림픽 직전 해에 치뤄지므로 ㅡ. 올림픽과 시기가 맞닿아 있을 경우 필연적으로 스쿼드를 분리할 수 밖에 없는 한국, 일본 등의 강호를 의식한 다른 아시아 준(準)강호들과 개최국 중국의 입김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이로써 전무후무하게 와일드카드를 마음대로 뽑지 못하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 김호곤 감독의 불운이었다. 감독 본인은 올림픽 메달권 진입을 위해 자신의 팀에 부족한 부분이 어디에 있는지를 정확히 잘 알고 있었고, 지역예선이 끝난 후 불과 3개월도 안되는 시간 동안 이를 메울 방법은 와일드카드 밖에 없었기 때문에 와일드카드를 강력히 요구했으나, 역대 어느 감독도 겪어보지 못한, 일부 선수에 대한 '선발 불가'라는 상황에 처해야 했던 것이다 ㅡ 물론 이러한 불운들을 김호곤 감독에 대한 평가의 요소에 전적으로 포함시켜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불운과 같은 돌발 요소에 대비하고 극복하는 것도 때로는 감독의 임무이기 때문이다. 다만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행운이 따랐던 만큼 불운도 있었고, 최종 성과는 그러한 불운 또한 극복하면서 이루어진 것이라는 점이다 ㅡ.



  외국인 감독에 대한 맹신과 그로 인한 이중적인 잣대, 이제는 버려야

  이 대목에서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부 '안티 김호곤' 축구팬들의 이율배반적인 태도이다. 그들은 히딩크 이래 코엘류, 본프레레호를 거치면서 일관되게 '감독이 원하는대로 선수를 뽑을 수 있도록 전권을 주라'고 외치고 있다. 차범근 감독 시절 선수 선발에 기술위원회의 입김이 작용한 것을 비판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김호곤 감독의 이천수, 박지성 차출이나 와일드카드 선발에는 두팔 들고 반대하고 나선 것이 또한 이들이다. 왜 한국 감독은 '원하는대로 선수를 뽑으면 안되'는가?


  그와 같은 반대 논리에는 수긍할 수 있는 면과 그렇지 않은 면이 혼재한다. 올림픽과 아시안컵의 일정이 맞닿은 초유의 상황에서 팬들은 선수의 혹사와 선수생명 단축을 우려했다. 김남일에 대한 이러한 우려는 분명 타당했고, 김남일의 부상 자체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다행히 그는 아시안컵과 올림픽, 그리고 K리그를 연달아 뛰는 최악의 상황은 어쨌든 피했다. 그러나 이천수, 박지성, 송종국에 대한 반대는 이율배반적인 것에 가까웠다. 이천수, 박지성은 애초부터 연령이 U-23인 만큼 감독이 그들을 기용하겠다는 생각을 갖는 것은 결코 무리가 아니다. 송종국은 한국의 부실한 오른쪽 라인을 보충할 수 있는 회심의 카드였다.


  그러나 박지성과 송종국의 '소속 클럽에서의 입지'를 고려해 팬들마저 불참을 지지하는 사이, 페예노르트는 노회한 수법으로 송종국의 차출을 피해나갔고 ㅡ 부상당해 올림픽에 참가할 수 없다던 송종국이 에레디비지에 개막 첫 경기에서 무엇을 했는지 보라!! ㅡ 박지성 또한 아시안컵에서만 세 경기를 뛰고 PSV로 돌아가 맹활약하고 있다. 묻고 싶은 것은 그들이 이제 '누구를 위해' 뛰는가 하는 것이다. KFA 엠블렘이 붙은 유니폼을 입고 그들이 할일은 더 이상 남아있지 않은 것인가?  병역 특례도 얻고, 경제적 안정을 얻었으며, 해외 진출까지 성공한 선수들이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 뛰는 경기에서는 더 이상의 성취 동기가 남아있지 않아 국가대표 전력이 공동화되는 현상을 보면서도 팬들의 '유럽 클럽 편들어주기'와 '감독의 무리한 차출 반대'는 지당하다고 해야 할까?


  설령 백보를 양보해서, 한 나라의 축구 자원이 최우선순위로 집중되어야 할 곳은 국가대표팀이기 때문에, 올림픽대표팀 감독은 좀 참아야 한다고 하는 것이 축구팬들의 일치된 의견이라면, 기대치 또한 그에 맞게 하향 조정되는 것이 옳다. 그리고 그 하향 조정된 기대치는 '4강'이 아니라 '8강'이 적당하다. 올림픽대표팀은 그 기대치를 충족하는 성과를 거뒀다. 그런데 '안티 김호곤'들의 기대치는 낮아질줄 모르고 오히려 파라과이전에서 패하자마자 기다렸다는듯이 감독을 비난하기에 바쁘다.


  이런 이율배반적인 모습은 본질적으로 국내 감독에 대한 불신과 외국인 감독에 대한 맹신에 기인하고 있는 바가 크다. 물론 그간 한국 감독들이 우리 축구팬들을 실망시키고 때로는 좌절에 이르기까지 하였음을 모르는 바가 아니다. 그러나 외국인 감독만을 한국 축구의 '구세주'로 여기고, 그 '구세주'가 왔어야 할 자리에 '못 미더운' 한국 감독이 앉아있다는 이유로 그에게 가해지는 과도한 비난과 지나치게 엄격한 잣대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움베르토 코엘류가 베트남, 오만에 패하고 몰디브와 비길 때도 내내 '기다려 주자'는 여론의 지지를 받는 '행운'을 누린데 비해, 아시아 예선을 무실점 전승으로 통과하고, 같은 연령대의 네덜란드 대표팀을 이겨보고, 라이벌 일본과도 좋은 경기를 보여주고, '56년만의 올림픽 8강 진출'을 이뤄냈으며 종국적으로는 성공적인 세대교체의 디딤돌을 놓는데에 기여한 감독은 일부 팬들로부터 단 한번도 인정을 받지 못하고 '호로곤'이라는, 입에 담기조차 민망한 욕이나 들어야 하는 현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맺으며 : 김호곤을 위한, 아니, '제2, 제3의 김호곤들'을 위한 변명

  이 글의 본론에서 감히 지적하지 못한 한 가지가 있으니 그것은 히딩크에 관한 것이다. 자국 대표 선수들과 코칭스태프가 최선을 다해 이뤄낸 성과마저 '행운의 산물'로 치부해버리는 일부 팬들에게, 나는 그들이 어떻게 한국의 월드컵 4강은 '운발'로 돌려버리지 않고 인정하며 받아들였는지 묻고 싶었다. 김호곤 감독에게 적용하는 잣대를 똑같이 적용한다면, '포르투갈이 골대를 맞추지 않고 골을 넣었다면?' '비에리가 골문 2m 앞에서 홈런을 날리지 않았다면?' '모리엔테스가 골대를 맞추지 않고 골을 넣었다면?'이라는 질문들에 그들은 어떻게 답할 것인가 말이다 ㅡ 오해를 피하기 위해 덧붙인다면 나는 올림픽 8강은 물론이고 월드컵 4강도 결코 '행운'의 산물로 보지 않는다 ㅡ.


  그러나 이내 그러한 질문을 던질 마음을 접어야 했으니, 그것은 김호곤 감독이 왜 팬들의 미움을 사기 시작했는가를 다시금 떠올린 까닭이다. 그는 영웅이 만들어 놓은 스쿼드와 전술을 그대로 쓰지 않고 마음대로 교체를 단행하다가 팬들의 미움을 샀다. 그는 영웅을 감히 막말로 지칭했다가 팬들의 미움을 샀다. 그리고 그는, 모든 것을, 심지어는 잔디에 물뿌리는 것까지 통제할 수 있는 환경에서 영웅이 이룬 업적을 뛰어넘지 못해, 영웅이 했던 것 ㅡ 2003 에레디비지에 마지막 경기에서의 PSV의 볼돌리기 ㅡ 을 똑같이 하고도 안티 세력들의 비난을 받아야 했고 TV 인터뷰에서 '우선 국민 여러분께 죄송하다는 말씀부터 드리고...'라고 말해야 했다.


  어느 팬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월드컵 4강은 선수들에게도 독(毒)이었지만 팬들에게도 독이 되고 있다". 이 말은 지극히 타당하다. 언제부터인가 멕시코나 파라과이쯤은 우리 팀이 '당연히' 이겨야 할 팀으로 여기고, 1라운드 통과는 당연한 성적으로 아는 팬들이 생겨났다. 외국인 감독이라면 한국의 팀 컬러에 적합한지 아닌지 따져보지도 않고 쌍수를 들고 환영하며 '시간을 주자' '모든 것을 지원하라' '기다려 주자'고 외치면서 한국인 감독은 '역시 거기까지가 한계다'라고 손가락질하는 팬들이 생겨났다.


  이런 현상은 한국 축구의 미래를 생각할 때 정말 위험한 독(毒)이다. 외국인 감독을 맹신하고 한국인 감독을 깎아내리기에 바쁜 팬들은, 국제 무대 경험이 있는 한국 지도자들을 차근차근 키워야 한다는데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않은채, 12년만의 2라운드 진출에 성공한 박성화를 깎아내리기에 바빴고, 성적에 집착하지 말아야 할 U-17 레벨에서의 세계대회 1라운드 탈락조차 문제삼아 선수들은 더없이 좋은 감독이라고 칭송하는 윤덕여를 쫓아내라고 아우성이었고, 이제는 '56년만의 승장' 김호곤 감독마저 거기까지가 한계라고 손가락질하기에 바쁘다. 윤덕여를, 박성화를, 김호곤을 모두 몰아내고, 우리는 20년이고 30년이고 외국인 감독만 쓸 참인가?  그래서 브라질 사람이 오면 브라질식 축구를 하고, 네덜란드 사람이 오면 네덜란드식 축구를 하고, 프랑스 사람이 오면 프랑스식 축구를 할 참인가?


  선수 생활을 곧 마무리하는 홍명보가 축구 지도자가 아닌 축구 행정가의 길을 걷기로 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아시아의 대스타 김주성도 축구행정가의 길을 걷고 있다. 누구보다도 국가대표팀 생활을 오래했고 국가대표팀 감독이 받는 압력을 아는 그들이 '축구 지도자'가 아닌 '축구 행정가'를 택한 것이 내 눈에는 결코 우연으로 보이지 않는다. 1976~1978년 국가대표팀 주장으로 선수 시절의 경력에서도 꿀릴 것이 없고, 허정무도, 크라머도, 아나톨리 비쇼베츠도 이루지 못한 한국의 8강 진출을 이뤄낸 감독이 자국 최대의 축구 사이트에서는 돌팔매를 맞고 있음에야, 누가 감히 지도자의 길을 걷고자 하겠는가.


  이 장문의 글은 그래서 '김호곤을 위한 변명'이자, '제2, 제3의 김호곤들'을 위한 변명이기도 하다. 김호곤 감독이 이런 비난을 받을진대, 하물며 훗날 '이민성 감독'이나 '김상식 감독'이 나온다면, 그들이 단 한 경기라도 패할 때마다 받는 비난은 오죽이나 하겠는가. 김호곤 감독이 이번 올림픽대표팀 감독 임기중 거둔 성과물은 단언컨대 역대 어느 국내 감독보다도 뛰어난 것이며, 그는 그에 걸맞는 평가를 받을 자격이 있다. 중국이나 이란이 그토록 갖고 싶어해도 갖지 못한 것을 어찌하여 우리는 발로 차고 던져버리기에 바쁜가?  이제 국내 감독들이 이뤄낸 성과물도 인정하고 칭찬해주는 풍토가 정착되고, 그리하여 승장이 패장처럼 취급받고 '죄송하다'는 말로 인터뷰하는 모습을 더 이상 보지 않게 되기를 소망한다.

2011년 11월 25일 금요일

[축구] 최용수를 위한 변명 (2011. 11. 22.)

  * 이 글은 2011. 11. 22.에 FC서울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쓴 글입니다. http://j.mp/sHKzvt






  * 이 글은 제법 깁니다. 보시는 팬들마다 결론에 대한 의견은 다를 수 있겠지만, 최용수 감독의 공과를 논함과 더불어 이번 시즌을 결산하고 우리가 앞으로 보완해야 할 내용도 함께 담고 있습니다. 글이 길더라도 되도록이면 끝까지 읽어주시고, 함께 많은 토론을 나누어 보았으면 합니다. 아울러 구단 관계자 여러분들께서도 이 글을 한번쯤은 차분히 정독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최용수를 위한 변명
 

  
  글을 시작하면서 먼저 한가지 밝힌다. 나는 ‘최용수빠’다. 처음부터 ‘감독 최용수’의 열렬한 지지자였던 것은 아니다. 황보관씨가 경질되고 최용수 수석코치가 감독대행이 된다는 공식발표를 접했을 때 ‘감독 최용수’에 대해서는 확신이 없었다. 발표 전날 ‘황보관 경질설’을 다른 경로를 통해 들었지만 그 때 함께 듣기로도 “수석코치를 당장 감독으로 승격시키기에는 난감한 상황이라는 것이 중론”이라고 했었다. 90년대 아시아를 평정했던 스트라이커 ‘독수리 최용수’의 전과정을 지켜봐온 사람으로서 선수 시절에 대한 추억과 향수는 당연히 있지만, ‘감독 최용수’는 어디까지나 그것과는 별개였다. 오히려 단순하고 투박한 이미지가 강하게 남아있는 그가 과연 좋은 지도자가 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는 것이 솔직한 고백이다. 경험적으로도 공격수 출신은 미드필더나 수비수 출신보다 지도자로 성공하기 어렵다는 점에서도 물음표를 떨칠 수 없었다.



  선입관을 깨뜨린 최용수의 감독 데뷔전  
 
  기대 반, 의구심 반으로 중계를 통해 지켜본 첫 경기부터 ‘감독 최용수’는 그런 선입관을 여지없이 깨뜨렸다. 황보관씨가 추락시킨 팀 순위, 감독 경질로 어수선해진 상황에 폭우까지 겹쳐, 1만명이 채 안되는, 최근 몇 시즌을 통틀어 홈 최소 관중이 입장한 제주전. 원균이 칠천량에서 몰살시킨 수군을 넘겨받아 배 열두 척으로 싸우는 것과 같은 상황이었던 그 경기에서 최용수는 90분간 온몸으로 비를 흠뻑 맞으며 전력을 다해 독전(督戰)했다. 지난 시즌 베스트드레서로 이름을 떨친 감독 답게 자기 옷이 젖을까봐 비옷을 입고 자리에 차분히 앉아 있었던 바로 옆 벤치의 제주 박경훈 감독과는 너무나도 대조적인 그림이었다(이는 동시에 내가 제주 박경훈 감독을 서울 감독으로 영입하자는 주장에 전혀 동의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 폭우 속에서 열린 4월 30일 제주전. 온몸으로 비를 맞은 최용수 감독과 대조적으로
제주 박경훈 감독은 비옷을 입고 있다.
이날 최용수 감독이 혼신을 다해 선수들을 독전하는 동안
박경훈 감독이 벤치에 앉아 있는 장면은 자주 카메라에 잡혔다.


 
  그날 경기는 서울이 2-1로 이겼다. 이날의 역전승이 이번 시즌 반전의 주춧돌이 된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팀이 위기에 봉착한 상황에서 ‘감독 경질 효과’와 선수들의 각성으로 정신력만 독려해도 절대 질 수 없는 경기였다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축구가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감독 경질한 뒤 첫 경기에서도 또 지거나 잘해야 비기는 팀을 나는 K리그에서도 유럽 리그에서도 여럿 봐왔다. 어차피 그날의 승리는 전술적 능력이 관건은 아니었다고 해도, 적어도 최용수는 감독 데뷔 첫 경기에서 ‘리더십이 무엇인지 아는 감독’의 모습을 온몸으로 보여주었다. 머플러를 목에 걸치고 폼만 잡으며 인터뷰에서 허언(虛言)만을 일삼던 감독이 나가고 새로 지휘봉을 잡은 감독은 첫 경기부터 선수들과 온몸으로 비를 맞으며 동고동락한다ㅡ 선수들에게 그보다 더 강한 메시지는 있을 수가 없었다. 그 다음 경기부터 나는 다시 상암을 찾기 시작했다.
 
 
  14위에서 9위, 6위를 거쳐 3위까지
 
  그 후 최용수 감독이 이끄는 서울이 걸어온 과정은 모두가 아는 그대로다. 황보관씨가 경질될 때 7라운드를 마치고 14위까지(우리 뒤에는 올 시즌 ‘K리그의 더비 카운티’였던 강원과, 구단주가 돈줄을 묶어버린 성남만이 있을 뿐이었다) 추락했던 팀은 슬슬 순위를 치고 올라오더니 9위, 6위를 거쳐 3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정규리그 성적 15승 4무 4패, 우리가 패한 상대는 대구와 성남, 그리고 오심으로 억울한 패배를 당한 수원 뿐이었다. 2위 포항을 턱밑까지 따라 붙었다가 일격을 당한 9월 대구전이 못내 아쉽기는 하지만, 그 전까지 우리는 6, 7, 8월 석달 동안 리그에서 11전 8승 3무를 기록하며 단 한번도 지지 않았기에 그 패배는 확률상 언젠가 한번은 겪을 수 밖에 없는 패배였다.
 
 

  무승부가 승률 계산에 영향을 주는 야구와 달리 오로지 ‘승리’만을 승률로 계산하는 축구에서 60%를 넘는 승률은 수준급의 감독만이 올릴 수 있는 승률이다. 감독 데뷔 시즌 정규리그 승률 65.2%(K리그 29시즌 사상 신인감독 역대 최고 승률), 모든 대회 통산 데뷔 시즌 20승 달성(20승 5무 8패, 승률 60.6%, 역대 신인감독 데뷔 시즌 다승 2위)14위까지 추락했던 팀을 추스르며 3위까지 도약, 안양 시절은 물론 ‘럭키금성축구단’ ‘LG치타스’ 시절에도 못해본 팀 최다연승 7연승 기록ㅡ 이상의 성적만으로도 구단은 최용수 감독의 노고를 인정하고 일찌감치 ‘대행’ 꼬리표를 떼어줬어야 맞다. 적어도 내가 아는 축구 기자들은 이구동성으로 그렇게 평가했다.
 


▲ 시즌 초반 최악의 부진에 빠졌던 FC서울이 14위에서 3위까지 도약해 정규리그를 마감할 수 있었던 데에는
최용수 감독의 공로가 컸다는 점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6강 플레이오프, 최악의 패퇴,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행’ 꼬리표를 떼지 않고 시즌 끝까지 온 이상에는, 프런트가 생각하고 있던 마지노선은 ‘아챔 출전 티켓 획득’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어쩌면 서울 팬들 상당수가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있던 마지노선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마지노선이 어제 무너졌다. 아챔 출전 좌절도 문제지만 경기 내용이 참혹할 정도로 나빴다. 홈에서 3실점을 한 것이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 팬들이 대부분일 것이고, 나 역시 후반 막판에 E석 관중들이 그렇게 많이 집에 가는 것을 본 기억이 없다. 최악의 패퇴였다. 
 
 

  그것으로서 올 시즌 FC서울의 도전은 끝이 났고, 동시에 그 경기는 ‘최용수 감독’의 최종전이 될 가능성도 높아졌다. 솔직히 인정한다. 여전히 ‘정식감독 최용수’에 대한 미련이 있지만, 객관적으로 할 말이 빈약해진 것은 사실이다. 황보관씨가 조금만 승점을 덜 잃고 갔더라도 정규리그 2위가 충분히 가능했지만, 3위를 하면 단판 승부 두 판을 이겨야 아챔에 나가는 것은 정해진 룰이다. 불합리해도 어쩔 수가 없다. 그 룰에 따른 기대치는 충족되지 못했고, 내년에 우리 팀은 아챔에 나가지 못한다. 팬들의 실망은 최고조에 이르렀으며, 어제 경기를 관전했다는 허창수 구단주도 “최용수로는 안되겠다, 외국인 감독을 꼭 영입해라”고 지시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그랬는지 안 그랬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최용수 감독이 올 시즌 보여준 훌륭한 성과가 한꺼번에 폄하되어서는 안될 일이다. 물론 비판받을 것은 비판받아야 한다. 이 글은 그러한 비판에도 소홀하지 않을 것이다. 더 많은 지적과 비판이 ‘초보감독 최용수’를 더욱 지혜롭게 만들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최용수 체제’가 얼마나 불안정한 위치에서, 어느 정도로 지원을 받지 못한 채로 이만한 성과를 이뤄냈는지도 정확히 기억할 필요가 있다.
 
 

  울산과의 6강 플레이오프, 최용수 감독이 잘못한 것들

  먼저 최용수 감독의 실책부터 지적하자. 어제 경기는 감독의 실책도 일정 부분 패배의 원인이 되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지적해야 할 실책은 경험이 적은 고광민을 선발로 기용한 것이다. 보통은, 감독이 특정한 선수를 선발로 기용할 때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팬은 선수를 잘해야 일주일에 한번 보지만, 매일 선수를 관찰하는 감독은 팬이 보지 못하는 다른 많은 것들을 본다. 그런 점에서 나는 어지간해서는 스타팅 라인업을 문제삼지는 않는 편이다. 고광민이 강릉 전지훈련에서 유난히 좋은 컨디션을 보여주었을지도 모르지 않는가.
 
 

  그러나 최용수 감독의 선택은 그날만은 달랐어야 했다. 아무리 훈련장에서 물오른 감각을 보여주더라도, 토너먼트 단판 승부는 경험이 우선이다. 큰 무대 경험 이전에 올해 리그 출장경기수 자체가 적은(어제 경기가 6경기째) 고광민은 선제골을 허용하자 당황하고 조급해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최용수 감독 스스로 선발 기용의 실패를 인정하고 하프타임에 최태욱으로 교체했듯이, 선발에는 처음부터 최태욱이 들어가는 것이 맞았다. 산전수전 다 겪어본 김호곤 감독이 노련하게 서울을 깰 비책을 준비해온데 비해, 감독으로서는 플레이오프 무대에 처음 서 본 최용수 감독은 너무 나이브한 선택을 했다.



▲ 선발 멤버 기용에 관한 최용수 감독의 나이브한 선택은
6강 플레이오프 울산전 패배의 주요한 원인이 되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좋지 못한 전반전 경기 내용에 더 원인이 있는 선발 기용으로는 한태유 선수도 있다. 올 시즌 리그 2경기 출전에 불과한 한태유를 선발로 결정한 배경에는 이해가 가는 측면도 없지는 않다. 하대성이 부상으로 인해 출전하지 못하는 것으로 경기 전날 정리가 되었고, 리그 최종전 경남과의 경기에서 한태유를 기용해 결과가 좋았던 기억도 생생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결과는 어디까지나 하대성-한태유를 나란히 기용했을 때의 결과였다. 한태유 혼자 중원을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물론 진짜 문제는 중원보다는 다른 곳에 있었지만 말이다.
 
 
  어제 패배에 관하여 (내키지 않는 일이지만) 굳이 특정 선수의 잘못을 지적하자면 김용대 선수와 현영민 선수의 잘못이 크다. 첫번째와 두번째 실점 상황은 누가 봐도 김용대의 판단 착오다. 골키퍼가 수많은 경기를 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다고 넘어가기에는 어제 경기는 너무 중요했다. 그래도 어제 우리에게 경기를 뒤집을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니 그럴 수 있다고 쳐도, 현영민의 실수는 정말 해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주장 완장을 차고 나온 베테랑 멤버가 1-2로 추격골이 들어간 상황에서 앞장서서 ‘붕 뜬’ 상태가 되고 말았다. 킥오프 직후 정상적인 수비 위치에 복귀해 있지 않다가 상대의 기습공격에 측면이 뚫려 실점의 빌미를 제공했다. 자신과 동료들의 침착성을 유지시켜야 할 주장으로서의 덕목을 그 순간 현영민에게서는 어찌된 일인지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어제 경기는 1-3이 된 순간 사실상 경기가 끝나버렸다. 주장이 이런 실책을 하는 경기는 이길래야 이길 수가 없는 경기다.
 
 

  그러나 이 또한 궁극적으로는 최용수 감독이 책임져야 할 몫이다. 우리는 어제 여러모로 운도 따르지 않았다. 데얀의 오프사이드 골은 처음부터 오프사이드 선언이 되었으면 차라리 나았을 것을, 골이 인정되었다가 취소되는 바람에 선수들의 심리 상태에 찬물을 끼얹었다. 최현태의 회심의 슈팅은 골대를 때렸다. 만약 골이 되었다면 경기 결과는 정말 알 수 없었을 것이다. 경기 며칠 전 갑자기 부상당한 하대성도, 9월 김한윤의 가격으로 시즌 아웃된 문기한도 없는 상황에서 우리의 가용자원에는 분명 제약이 있었다. 특히 하대성의 공백은 단순히 ‘제약’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정도를 훨씬 넘어서는 것이다. 그런 불운과 제약에도 불구하고, 결과는 감독의 책임이 맞다. 노회한 김호곤 감독은 울산의 장점을 극대화한 전법을 철저히 훈련시켜 가져왔지만 그 전술은 익히 예상된 것이었고, 비록 우리가 제공권에 약점이 있다고는 하지만 보름은 준비하기에 결코 짧은 기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돌이켜 보면, 최용수 감독에 대한 이런 아쉬움은 이번 6강 플레이오프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컵대회 8강전이야 중요성도 떨어지는 경기였던 데다가 당시에는 리그 순위가 훨씬 급한 상황이었으니(바로 다음 경기가 전북 원정이었다) 후보들을 내세워 지고 돌아온 것을 누구나 이해한다. FA컵 8강전은 비록 탈락했지만 원정이었고 할만큼 한 후회없는 경기였다고 생각한다(그 경기는 노병준이 너무 잘했다). 그러나 1-2가 된 다음에 세번째 실점을 허용해서 결국 발목이 잡힌 알 이티하드와의 아챔 8강 1차전과 어제의 울산전은 묘하게 닮은 구석이 많다. 그래서 적지 않은 팬들이 최용수 감독의 단기전 지휘 능력에 의구심을 표하는 것이고, 이는 일정 부분 일리가 있다. 감독대행 시즌부터 ‘무전기 매직’을 선보인 신태용 감독과 달리 단기전 지휘 능력은 초보감독 최용수가 아직 갖추지 못한 부분이 맞다. 앞으로 나아질 수 있겠지만, 현재로서는 객관적으로 인정해야 할 점이다.
 
 

  그러나, 결코 나쁘지 않은, 오히려 훌륭했던 최용수의 리그 운영 능력

  하지만, ‘우리 팀의 다음 시즌 감독을 누구로 할 것인가’에 있어 최용수 감독의 단기전 지휘 능력 결여가 판단 기준으로 작용한다면, 이는 잘못된 것이라고 본다. 다음 시즌은 올 시즌과 구조가 매우 달라지기 때문이다.
 
 

  올해 서울은 모든 대회를 통틀어 총 44경기의 공식 경기를 치뤘다(정규리그 30경기, ACL 9경기, FA컵 3경기, 컵대회 1경기, 챔피언십 1경기). 내년에는 리그만 우리가 올해 소화한 전체 경기와 맞먹는 44경기다. 대신에 컵대회는 없어진다. ACL은 (안타깝게도) 안 나간다. 단판 승부로 아챔 출전 티켓이며 최종 우승팀을 정하는 챔피언십도 없어진다. 모든 것은 44라운드까지 치뤄지는(30라운드 이후는 상위 스플릿 8팀 간의 경기) 리그 순위로 정해진다. 우리가 나가야 할 단기전은 FA컵 밖에 없다. 내년에 리그 우승컵을 되찾아오거나, 적어도 아챔 출전권은 재확보해 자존심을 회복하는 것이 목표라면, 감독 선임에 있어 중요한 것은 단기전 지휘 능력이 아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감독의 ‘리그 운영 능력’이다. 선수 발굴, 선수 기용, 전술적 능력과 같은 감독의 기본적인 능력을 포함해 팀 컨디션 관리, 선수 로테이션, 팀 케미스트리에 이르기까지 장기 레이스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요소들이 이 ‘리그 운영 능력’에 포함된다. 시즌의 처음부터 끝까지 (당연히 중간 중간 한두번씩 질 수는 있어도) 큰 슬럼프 없이 리그를 운영하면서 라운드당 평균 승점 2점 이상을 따낼 수 있다면 수준급의 감독이라고 할 수 있다(이런 점에서 예컨대 시즌 중에 6연패를 당한 수원 윤성효 감독은 비록 최종 순위는 나쁘지 않았을지 몰라도 리그 운영 능력면에서는 낙제점에 가깝다).
 
 

  참고로 이 ‘라운드당 평균 승점 2점’은 내 개인적인 기준이 아니라 유럽에서의 기준이 통상 그렇다. 리그는 홈에서 한번, 원정에서 한번 경기를 치른다. 이때 강팀이라면 홈에서는 이겨야 하고, 원정에서는 불리한 여건에도 불구하고 무승부는 거두고 올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1승 1무를 하면 2경기에서 승점 4점을 쌓게 된다. 그래서 기준이 ‘라운드당 평균 승점 2점’인 것이다. 시즌 중에 다소 진폭이 있더라도 시즌 끝까지 경기당 평균 승점 2점 이상의 페이스를 유지한다면 팀은 1, 2위를 다투게 된다. 지금 당장 주요 리그의 역대 시즌 순위표를 확인해보면 이 기준이 충분히 유의미한 것임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 시즌 보여준 최용수 감독의 리그 운영 능력은 어떠했을까. 아래 표를 한번 보자.


▲ 최용수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8라운드부터 최종 라운드까지를 기준으로 한 2011 K리그 순위표. 
이 기간 동안 서울은 전북과 매우 근소한 차이로 2위에 해당하는 성적을 올렸음을 볼 수 있다. 
물론 기록이 모든 것을 다 보여주는 것은 아니지만, 기록은 거짓말을 하는 법이 없다.



  최용수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8라운드부터 최종 30라운드까지 23라운드를 기준으로 한 리그 테이블이다. 표를 보면 눈에 띄는 점이 몇 가지 있다. 첫째, 황보관씨가 하도 승점을 많이 잃고 가서 그렇지(우리는 끝까지 그 뒷감당을 하다가 시즌을 마쳤음이 한눈에 보인다), 8라운드부터의 성적을 기준으로 하면 서울은 3위가 아닌 2위이고, 전북과의 승점차도 단 1점에 불과하다. 한 경기를 남겨놓고 정규리그 1위를 확정지은 전북이 마지막 경기는 최선을 다하지 않아 무승부에 그쳤다고 가정해서 승점 2점을 더해주더라도 승점차는 3점에 불과하다. 우리 선수들은 훌륭한 선수들이지만, 전북이 우리보다 더 두터운 스쿼드를 가졌다는 데에 이의를 달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정도의 결과는 양팀 스쿼드층을 비교할 때 최용수 감독이 잘했으면 잘했지 못한 결과가 아니다.
 

  둘째, 우리가 올 시즌 수비를 굉장히 못한 것 같지만, 전체적으로 우리 수비는 결코 나쁘지 않았다. 득점은 이제 ‘닥공’이 수식어가 된 전북과 실상 2골 밖에 차이가 나지 않고, 실점은 경쟁팀이었던 포항, 수원, 그리고 안익수 감독이 수비를 탄탄하게 구축하는데 성공했다는 부산과 완전히 대등한 수준이다. 김호곤 감독의 울산만이 독보적인 ‘짠물 수비’를 보여주었을 뿐이다.




▲ '그 정도 선수로 그 정도 성적을 못 거두는 게 말이 되느냐'며 최용수 감독의 성과를 폄하하는 시선도 있다.
그러나 축구는 결코 선수들끼리 알아서 해도 그만인 스포츠가 아니다.
출중한 선수들일지라도 그들의 능력을 극대화시키는 것은 어디까지나 감독의 몫이다. 



  무엇보다도, 위 표를 보면 ‘경기당 평균 승점 2점’ 이상(그것도 2.2점대)을 따낸 감독은 최강희 감독과 최용수 감독 뿐인 것을 볼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성과에는 항상 다음과 같은 반론이 따라 붙는다. “그것은 데얀(과 몰리나)이 잘한 결과이지, 그만한 선수로 그 정도 성적을 누가 못 거두나?” 타당하지 않은 비판이다. 축구는 선수들이 알아서 하는 경기가 절대 아니다. 한두번의 반짝 상승세라면 모를까, 14위에서 출발해서 3위까지 올라오는 것은 감독이 무능하다면 절대 나올 수 없는 결과다. 멀리 갈 것도 없이 황보관씨가 팀을 이끌 때 그 데얀으로 리그에서 골을 넣은 경기가 1경기 밖에 안되는 것은 무엇으로 설명할 것인가. 또한 우리에게는 ‘데몰리션’과 견줄만한(아니, 오히려 뛰어난) 데얀과 박주영, 데얀과 정조국이 있던 시즌들이 있었다. 그 시즌들을 모두 우승한 것도 아니고, 귀네슈와 빙가다가 ‘선수빨’로 감독을 한 것도 아니다. 출중한 선수들을 데리고 있더라도 그 선수들의 능력을 최대로 이끌어내는 것은 분명히 감독의 중요한 덕목이다. 최용수는 적어도 올 시즌 정규리그에서 이 점만큼은 대단히 성공적이었다고 보아야 한다.
 


▲ 전북 최강희 감독(위)과 서울 최용수 감독(아래). 올 시즌 K리그 8라운드부터 30라운드까지
라운드당 평균 승점 2점대 이상을 끝까지 유지한 감독은 이 두 사람 뿐이다. 



   세 번의 위기를 무난히 넘긴 최용수 감독의 위기관리능력

  수치상으로 드러나지 않는 팀 컨디션의 측면에서도, ‘감독 최용수’는 초보감독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위기를 유연하게 잘 넘겼다. 최용수 체제하에서 서울의 팀 사이클상 위기라고 할 수 있었던 시기는 세 번 있었다. 첫번째는 5월 21일 대구전 홈 패배(0-2)였다. 감독 교체 후 그 전까지 리그 3연승을 포함, 5승 1무(아챔 1승 1무, FA컵 1승 포함)를 달려온 서울이 패배하자 ‘감독 교체 효과로 일시적인 상승세를 달렸지만 여기까지가 끝인 것이 아니냐’는 관측들이 나왔다. 그날 패배가 던져준 과제는 세 가지였다. 신장을 이용한 상대 코너킥에 대한 대비책, 여전히 겉도는 데얀과 몰리나, 그리고 하대성이 있을 때와 없을 때 기복이 큰 전력차였다. 바로 다음 경기는 가시마와의 홈 단판 승부였다. 세 가지 과제 중 뒤의 두 가지는 구조적인 문제라 4일 만에 고칠 수 없는 것이었지만, 그래도 감독이라면 단판 승부를 앞두고 어떻게든 답을 내야만 했다. 가시마전에서 최용수 감독은 몰리나를 선발에서 제외하고, 하대성을 복귀시켰으며, 문전에서의 헤딩 기회를 거의 허용하지 않으면서 가시마를 3-0으로 셧아웃시켰다. 스코어도 스코어지만 완벽하게 가시마를 지배한 경기였다.



▲ 가시마 앤틀러스와의 2011 AFC 챔피언스리그 16강전에서 세번째 골을 넣고
골 세레머니를 하러 달려가는 고명진.
이날 경기는 '최용수 체제'가 첫 위기에서 '정답'을 보여주며
상대를 완벽히 지배했다는 데에 큰 의미가 있었다. 

 
 
 
 
  두번째 위기는 알 이티하드 원정 패배였다. 홈으로 돌아와 부랴부랴 치른 부산과의 경기에서도 졌다면 팀에 심각한 슬럼프가 올 수 있었다. 게다가 적장 안익수 감독은 서울을 구석구석 너무나도 잘 아는 상대였다. 그런 상대를 맞아 김동진, 문기한, 강정훈 등을 기용하며 위기를 벗어난 것은 인상적이었다. 이는 ‘리그 정상급의 팀이라면 리그에서 연패해서는 안 된다’는 조건을 충족시킨 것이기도 했다.
 
 
 
  마지막 위기는 수원전 패배였다. 경기의 비중 만큼이나 수원전 패배는 팀에 좋지 않은 후유증을 가져온 것이 분명했다. 훌륭한 경기 내용을 보여주고도 억울하게 패배해 타격은 더욱 컸다. 파장은 만에 하나 있을지 모르는 ‘데얀 없는 PO’를 대비한 플랜 B를 전반에 가동했다가 무위로 돌아간 인천전 무승부까지 이어졌다. 그 위기를 딛고 2경기 연속 다득점 승리로 끝내 정규리그 3위를 차지한 과정은 모두가 본 그대로다. 이 세번의 위기를 모두 잘 넘겼다는 것은 ‘감독 최용수’에게 결코 만만치 않은 리그 운영 능력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구단은 최용수에게 무엇을 해주었나

  이러한 평가를 두고 최용수 감독‘대행’에게 지나치게 후한 평가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2008, 2009, 2010 시즌 모두 정규리그 3위 안에는 들었으니, 원래 3위 안에는 들던 팀에서 3위한 것이 무어 그리 대단하냐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앞의 세 시즌 동안 우리가 7라운드까지 14위로 마친 적은 한번도 없다. 결론적으로 최용수의 올 시즌 리그 운영 능력은 기대 이상으로 훌륭했다는 것이다. 오히려 되짚어볼 점은 올 시즌 우리의 얇은 스쿼드와 그에 대한 구단의 태도다.
 
 

  먼저 올 시즌 개막 전, 그리고 시즌 중에 나간 선수들을 꼽아보자. 김치우, 최효진, 정조국, 김진규, 거기에 제파로프까지, 쟁쟁한 핵심 선수들이 나갔다(이외에도 나간 선수들은 더 많다). 공수, 미드필드에 걸쳐 핵심선수들이 나갔는데 이뤄진 보강이라고는 몰리나와, 시즌 전반기에는 제대로 나오지도 못한 김동진 뿐이었다. 어경준은 승부조작 연루로 퇴출됐다. 시즌 중에 이뤄진 보강은 단 한 건도 없었고, 최용수 감독이 직접 영입을 요청한 사샤는 10만 달러를 아끼려다 그랬는지, 메디컬 체크에서 정말 흠이 있었는지 모르겠으나 어쨌든 결국 영입되지 않았다. 중앙수비는 아직은 경험이 부족한 김동우가 메웠고, 아디는 여전히 나이를 잊은 훌륭한 기량을 보여주기는 했지만, 만약 그가 부상이라도 당했다면 올 시즌은 참으로 끔찍한 결과가 발생했을 것이다(아디의 나이에 부상을 당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 나이에는 한번 부상당하면 회복도 매우 더디다. 구단 프런트는 올 시즌 아디가 큰 부상이 없었다는 점에 대해 정말 운이 좋은 줄 알아야 할 것이다).
 
 

  반면 시즌 중에 전열을 이탈하는 선수들이 발생하면서 가뜩이나 얇은 스쿼드는 더욱 얇아졌다. 지난 시즌 30경기를 넘게 뛰었던 하대성은 올 시즌 부상과 회복을 반복했다. 언론은 서울의 핵심 선수가 데얀인 것처럼 말하지만, 경기장에서 매번 경기를 지켜보는 팬이라면 진짜 핵심 선수는 하대성이라는 사실을 잘 알 것이다. 현대축구에서 홀딩 미드필더가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하면 하대성을 핵심 선수라고 하는 데에는 전혀 무리가 없다. 최용수 체제에서 하대성이 출전한 리그 경기의 성적은 10승 4무 2패다. 알 이티하드전, 수원전, 울산전까지 우리가 넘지 못한 중요한 승부처에서 하대성은 모두 피치에 없었다.
 
 

  여기서 탓해야 할 것은 하대성이 아니다. 열심히 뛴 선수가 무슨 죄인가. 그렇다고 감독을 탓할 일도 아니다. 비판받아야 할 것은 하대성이 없으면 그에 필적한 대체자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얇은 스쿼드를 방치한 구단 프런트다. 정말로 아챔에서 우승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면 더블 스쿼드를 돌릴 수 있도록 이런 포지션은 당연히 주전 경쟁이 될 정도의 선수를 보강했어야 옳다. 사샤 건도 마찬가지다. 나는 지금도 사샤 영입만 잘 성사되었더라면 아챔 4강 진출에 실패하는 일도, 울산전에서 그렇게 허무하게 패배하는 일도 없었으리라고 생각한다. 비슷한 생각을 가진 팬들이 많을 것이다.
 
 

  돌아보면 시즌 중 전열에서 이탈한 선수는 하대성 뿐만이 아니었다. 물론 선수의 부상은 늘 있는 일이고, 감독은 그것까지 고려해서 팀을 운영할 책임이 있다. 그러나 포커를 치는데 가뜩이나 돈까지 넉넉한 상대방은 패를 일곱 장 들고 포커를 치는데 나는 여섯 장을 들고 쳐야 하고 그나마 세 판에 한 판은 다섯 장을 들고 쳐야 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김동진, 최태욱, 문기한, 고명진 등이 장기 부상을 당하거나 수시로 전열에서 이탈했는데 대체할 멤버는 마땅히 없었다. 결과가 좋아서 큰 비판을 받지 않았지만 ‘왜 OOO과 같은 선수가 선발로 나오지?’라는 의문을 가졌을 팬들 앞에서 감독의 고충은 오죽했겠는가. 선수로 지도자로, 밥먹고 축구만 30년을 한 사람이라면 선수의 ‘클래스’는 누구보다도 잘 알아보기 마련인데 말이다.
 
 

  중앙수비수와 수석코치 보강이 이루어졌다면 결과가 달라졌을 시즌

  프런트에 대한 이러한 비판은 무작정 선수 영입에 막대한 자금을 풀어 팬들의 눈을 즐겁게 하는 ‘자선사업’을 해달라는 주장이 아니다. 다만 이번 시즌 노력한 만큼의 결과를 얻기 위한 최소한의 투자조차 외면하고, ‘감독이 된 독수리’를 이슈 메이킹 재료로는 한껏 활용하면서도 실상은 선수도 코칭스태프도 제대로 보강해주지 않은 채, 마치 ‘어디 너 혼자 잘해보시든가, 혼자서도 잘하면 대행 꼬리표 떼어주고, 못하면 여지 없고...’라는 것처럼 방치했던 구단의 태도를 나무라는 것이다.
 
 

  올 시즌을 봐온 팬들이라면 보강의 우선순위는 다들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스쿼드는 중앙수비수가, 코칭스태프는 수석코치의 보강이 절실했다. 그 다음 조금 더 욕심을 부리자면 지금보다 좀 더 경쟁력 있는 하대성의 백업멤버가 필요했다. 시즌 중에 세번째까지는 현실적으로 힘들더라도 앞의 둘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했다. 통상 스트라이커 출신 감독들은 감독으로 성공하기가 수비수 출신보다 쉽지 않은데, 이는 본인이 공격수 출신이다 보니 수비 전술을 조련하는 법을 터득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격수 출신으로 성공한 감독들은 수비 조련에 있어서는 능력있는 코치진의 도움을 받았거나, 감독으로서 성공하기까지 초반의 시행착오가 길었거나, 대부분 이 둘 중 하나다. 쉬운 예를 들자면 수원 차범근 감독의 2008 시즌 성공에는 이임생 코치가 수비 조련에 기여한 공로가 컸고, 포항 황선홍 감독은 부산에서 3년 넘게 시행착오를 겪고서야 드디어 올 시즌 포항에서 빛을 보고 있다.
 
 

  최용수 감독은 전형적으로 수비 코치의 도움이 필요한 케이스였다. 스트라이커 출신임을 떠나서라도 그가 초보 사령탑이라는 점에서 유능한 코치진의 보좌는 거의 필수적이었다. 그러나 구단은 시즌 끝까지 ‘대행’ 꼬리표 떼는 일을 망설이며 코치진 보강에도 소극적이었다. 감독‘대행’이 있으니 ‘수석코치’를 데려오기란 애매했겠지만, 6월쯤 대행 꼬리표를 일찌감치 떼고 수비 조련에 능력있는 코치를 ㅡ 아마추어에 몸담고 있는 지도자일지라도 ㅡ 수석코치로 영입했다면 올 시즌 결과가 많이 달라졌으리라는 예상은 혼자만의 생각일까?
 
 

  실제로 현재 서울의 코칭스태프 구성을 보면 ㅡ 코치들께는 미안한 말이지만 ㅡ 다분히 급조된 조합이다. GK코치와 피지컬 트레이너를 제외한 두 명의 코치 중 김성재 코치는 황보관씨가 경질되면서 2군에서 급히 올라왔다. 이원준 코치는 U-18팀을 지도하다가 여름에야 코치진에 합류했다. 귀네슈-이영진-최용수나 빙가다-안익수-최용수 코칭스태프를 기억하는 팬들에게 이 조합은 완곡하게 말해 대단히 낯선 조합이다. 혼자서 모든 것을 다 잘해낼 수 있는 감독은 없다. 그런 점에서 올 시즌 ‘초보감독 최용수’가 한계를 보인 부분들이 있다고 한들, 그것을 최용수 혼자만의 한계이자 책임으로 돌릴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수석코치 복귀도, 해외유학도 정답은 아니다

  나는 이 글에서, 비록 최용수 감독이 당연히 부족한 점도 있지만, 여러가지로 좋은 감독이 될 수 있는 자질을 갖춘 지도자임을 강조하고자 노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마 이 글을 읽고 난 팬들의 반응은 “그래, 잠시 잊고 있었지만 최용수 감독이 올 시즌 공로가 많은 것은 인정하고 높이 평가한다. 그러나 다음 시즌에는 외국인 감독을 보았으면 좋겠다”는 쪽이 우세할 것이다. 패배의 여운이 진한 이 시점에서, 그리고 귀네슈와 빙가다가 보여준 축구가 여전히 우리의 뇌리에 강하게 남아있는 상황에서 그러한 반응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독 최용수’가 이렇게 지도자로 제대로 꽃피워보지도 못하고 자리를 내놓아야 한다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국적인 문화에서 사실상 감독이나 다름 없는 감독‘대행’의 위치에서 팀을 33경기나 지휘한 사람이 다시 수석코치가 되기란 쉽지 않다. 본인에게는 굴욕에 가까운 일일 수 있고, 새로 외국인 감독이 부임한다 한들 그 외국인 감독은 ‘최용수 수석코치’의 존재를 매우 불편하게 여길 수도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감독의 견제심리로 야구 SK와이번스에서의 김성근-이만수 같은 관계가 형성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그렇다고 해서 ‘최용수 감독대행은 선진축구를 더 공부하기 위해 구단의 전폭적인 지원하에 2년간 축구 유학을 떠나기로 했다’는 식으로 ‘모양새’를 갖추어 코칭스태프에서 제외한다면 그것은 더 문제다. 말이 좋아 축구 유학이지, 그 본질이 토사구팽임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귀네슈 감독도 2009 시즌에 정규리그 3위ㅡ6강 PO 탈락이라는 성적표를 받아들고 재계약에 실패했으니 일견 잣대는 공정한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적어도 귀네슈-빙가다 이전의 조광래-이장수 두 감독보다는 훨씬 좋은 경기 내용과 성적을 보여주었고, 심지어 황보관씨도 구단 역사에는 ‘제9대 감독 황보관’이라고 기록될 마당에, 배 열두 척을 넘겨받아 팀을 3위까지 이끈 최용수는 그 노고에도 불구하고 클럽 역사에 ‘제10대 감독 최용수’가 아닌 ‘감독대행’으로만 남는다면 이보다 불공평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더욱이 정규리그 3위ㅡ6강 PO 탈락이라는 결과가 ‘책임질’ 결과라면, 정말 책임져야 할 사람은 따로 있는데 말이다. 
 
 

▲ 최용수 감독은 이미 올해 감독대행의 신분으로 무려 33경기를 지휘했다.
그런 그가 다시 수석코치의 위치로 돌아가 트레이닝복을 입는 것은 말처럼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축구 유학'을 보내는 모양새가 정답이 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 뿐만이 아니다. 리그 승률 65%, 통산 승률 60%를 모두 넘겨도 감독직에서 잘리는 클럽이라면, 이는 장차 감독 후보들에게 FC서울 감독직을 ‘독이 든 성배’로, FC서울은 ‘토사구팽 구단’으로 인식하게 하는 부정적 시그널을 주기에 충분하다. 이런 정책은 첼시나 레알 마드리드 정도의 위상을 가진 팀이라야 (혹은 감독 교체를 밥먹듯이 하는 아랍권 클럽들이나) 감당할 수 있는 것이다. 더 본질적으로는, 무려 황보관씨를 감독으로 선임했던 구단이 외국인 감독을 임명한다 한들 정말 유능한 인물을 영입할 수는 있는 것인지, 그 감독이 내년 시즌 선수를 파악하고 K리그에 적응하느라 초반에 상당한 시행착오를 겪지는 않을지 ㅡ 멀리 갈 것도 없이, 귀네슈 감독은 부임 첫 해인 2007 시즌에 컵대회의 위상을 오해한 나머지 컵대회 우승에 전력을 다하는 실수를 한 적이 있다 ㅡ 에 대한 의구심은 전혀 해소되지 않았다(이런 점에서 내가 아는 한 서울팬은 최용수를 정식감독으로 선임하지 않고 외국인 감독을 영입하려는 시도를 “로또에 당첨되려고 직장을 그만두는 격”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적절한 비유라고 생각한다). 또한 2003 시즌 이후 가장 많은 리그 44라운드를 치뤄야 하는 내년 시즌에 이런 얇은 선수층을 그대로 두고는 최용수 감독이든 외국인 감독이든, 어느 누구도 끝까지 리그 우승경쟁을 펼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기에, 과연 감독 교체의 명분이 있는 것인지는 더욱 의문이다.
 
 
  마지막으로, 최용수를 위한 변명 
 
  끝으로, 한 남자로서, 인간으로서 이번 시즌 최용수 감독을 보며 느꼈던 ‘짠한’ 마음 한자락을 회고하면서 글을 맺는다. 늘 트레이닝복을 입다가 지휘봉을 잡은 뒤로는 경기장에나 기자회견장에나 항상 반듯한 정장을 입고 나오는 ㅡ 그러나 그 정장이 비를 맞든, 구겨지든 아랑곳하지 않고 열정을 다하는 ㅡ 최용수의 모습은, 오랫동안 코치로 있었던 그가 선수들에게 코치가 아닌 감독으로서의 자신의 포지션을 재인식시켜야 하는 상황을 이해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다른 한편으로, 그의 인터뷰를 볼 때면, 가끔 촌철살인의 멘트로 기사거리를 만들기도 했지만, 때로는 아직도 감독‘대행’의 신분에 있기에 ‘윗분’들의 ‘심기’를 거스르지는 않을까 극도로 조심하는 모습이 엿보이기도 했다.
 
 

  나이 어린 팬들에게는 와닿지 않을 수 있겠지만, 그런 ‘애매한’ 위치에 있을 때의 처신이 어느 정도로 어려운지는, 사회 생활을 조금이라도 해본 사람들이라면 금방 와닿는 일이다. 선수 시절 커리어로 보나 코치 수업 기간으로 보나 비슷한 황선홍, 유상철 감독은 모두 ‘감독’으로 자리잡았는데, 본인은 기대치가 높은 명문 구단에서 위기 상황에 갑자기 팀을 맡는 바람에 충족해야 할 기준은 높고 신분은 불안정한 처지에서 얼마나 고충이 컸을지는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런 고충을 겉으로는 전혀 드러내지 않으면서 묵묵히 팀 성적을 끌어올리는데 매진했다는 사실은 최용수를 더욱 높이 평가하게 만드는 점이고, 그래서 나는 ‘최용수를 위한 변명’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어제 패배 후 기자회견에서도 최용수 감독은 모 감독처럼 선수 탓도 하지 않고 “모든 것은 부족한 나의 책임이다”라고 스스로 책임을 떠안았다. 올 시즌 내내, 다른 누구의 탓도 할 수 없었던 특수한 위치에서 오직 팬과 선수들만 보고 최선을 다해온 그의 마지막 답변은 “향후 거취에 대해서는 구단으로부터 들은 바 없다”는 것이었다. 이제는 구단이 팬들과 최용수 감독이 모두 납득할 수 있는 답변을 해야 할 차례다.
 



2011년 8월 29일 월요일

곽노현 교육감 사건의 올바른 법적 이해

  * 이 글에 대한 기자의 무단 인용을 금합니다. 부분적으로라도 인용을 원하는 기자분께서는 트위터 @Song_Younghoon 으로 멘션을 보내 승낙받은 후에 인용하시기 바랍니다.






  들어가며


  곽노현 서울특별시 교육감이 28일 지난해 6.2 지방선거 선거 당시 진보진영 후보단일화를 위해 사퇴한 박명기 후보(서울교대 교수)에게 2억원을 전달한 사실을 시인했습니다. 곽노현 교육감을 지지했던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는 안타까운 소식이지만, 곽노현 교육감은 교육행정의 수장으로서 학생들에게 조금이나마 덜 부끄럽기 위해서라도 책임지고 자진 사퇴하는 것이 도리입니다. 교육감 직을 유지한들 이미 정책추동력을 상실했기에 서울시 교육청의 행정에는 나쁜 영향을 주게 될 것이라는 점에서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트위터를 비롯한 온라인에서 보이는 일부 진보 성향 지지자 분들(아직까지는 '대다수'라고는 믿지 않습니다)의 생각은 사뭇 다른 것 같습니다. 그 분들은 '곽노현 교육감의 선의를 믿는다'고 말씀하시면서, '여당이 주민투표에 패배하자 검찰이 곽노현 교육감을 표적수사해 낙마시키고자 법적으로도 유죄가 되지 않는 것을 억지로 수사하고 있다'고 하십니다.


  여기서부터 법적으로 심각한 오류가 있는 주장들이 등장합니다. 예컨대, "선거비용 보전 차원에 불과하기 때문에 대가성이 없다"거나, "후보 사퇴 전에 금전을 제공하거나 제공할 의사표시를 해야만 처벌되므로" 검찰이 선거 전에 금전 제공 의사표시를 했다는 진술을 받아내기 위해 무리한 수사를 하고 있다는 주장들이 그것입니다. (그 중 대표적으로는 전교조 부대변인 '부정변증법'님께서 쓰신 "박명기 곽노현 사건(?)을 냉정히 보자"라는 제목의 글  이 있습니다. 이 글은 어제(28일) 밤부터 트위터에서 매우 빠른 속도로 전파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들은 법적으로는 모두 틀린 것입니다. 곽노현 교육감을 옹호하는 논리는  이와 같은 법적 오해에 근거하고 있고, 그러한 오류를 바로잡지 않음으로써 잘못된 결론에 이르는 것은 진보진영 전체를 위해서도 하등의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전교조 부대변인께서 쓰신 위 글을 중심으로 법적 쟁점에 관한 일각의 오해들을 바로잡고, 곽노현 교육감 사건을 법적으로 정확히 분석한 뒤, 덧붙여 향후 유사한 사건을 예방하기 위해 필요한 제도적 대안을 모색해보고자 합니다.






  1. 곽노현 교육감의 혐의 사실에 대한 적용 법조는?


  우선, 현재 곽노현 교육감에 대한 혐의 사실을 간략히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가. 2010. 6. 2. 전국동시지방선거 당시, 박명기 후보는 서울특별시 교육감 후보로 등록하였다가, 2010. 5. 19. 곽노현 후보의 지지를 위하여 사퇴하였다.


  나. 이후 곽노현 후보는 서울특별시 교육감으로 당선되었고, 2011. 2.부터 2011. 4.까지 수 회로 나누어 제3자를 통해 박명기 전 후보에게 2억 원의 금전을 제공하였다.


  안타까운 것은, 법률 비전문가가 쓴, 적용 법조마저 틀리게 언급한 글이 널리 퍼지면서 트위터에서는 마치 곽노현 교육감의 위와 같은 행위가 처벌되지 않는 것처럼 전파되고 있는 점입니다. 그러나 그 글은 가장 기본적인 전제인 적용 법조부터가 정확하지 못합니다.


  '후보자에 대한 매수 및 이해유도죄'(이하 '후보매수죄'라고 합니다)에 관하여 정하고 있는 공직선거법 제232조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① 다음 각호의 1에 해당하는 자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상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1. 후보자가 되지 아니하게 하거나 후보자가 된 것을 사퇴하게 할 목적으로 후보자가 되고자 하는 자나 후보자에게 제230조(매수 및 이해유도죄)제1항제1호에 규정된 행위를 한 자 또는 그 이익이나 직의 제공을 받거나 제공의 의사표시를 승낙한 자


  2. 후보자가 되고자 하는 것을 중지하거나 후보자를 사퇴한데 대한 대가를 목적으로 후보자가 되고자 하였던 자나 후보자이었던 자에게  제230조제1항제1호에 규정된 행위를 한 자 또는 그 이익이나 직의 제공을 받거나 제공의 의사표시를 승낙한 자


 ②제1항 각호의 1에 규정된 행위에 관하여 지시·권유·요구하거나 알선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상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제3항 생략)


 참고>  ①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개정 1997.1.13, 1997.11.14, 2000.2.16, 2004.3.12, 2009.2.12, 2010.1.25, 2011.7.28>  


  1. 투표를 하게 하거나 하지 아니하게 하거나 당선되거나 되게 하거나 되지 못하게 할 목적으로 (중략) 금전·물품·차마·향응 그 밖에 재산상의 이익이나 공사의 직을 제공하거나 그 제공의 의사를 표시하거나 그 제공을 약속한 자






  위에서 보는 바와 같이, 공직선거법 제232조 제1항 '제2호'에 의해, 후보 사퇴하기 이전 뿐만 아니라 후보 사퇴한 이후에도 후보자이었던 자에 대해 후보를 사퇴한데 대한 대가를 목적으로 금전을 제공하면 처벌됩니다. 또한 금전 뿐만 아니라 재산상의 이익, 공사(公私)의 직을 제공하는 것도 금지되며, 그 제공의 의사를 표시하거나 제공을 약속하는 것만으로도 처벌됩니다. 그리고 그 상대방 및 이를 지시, 권유, 요구, 알선한 자도 처벌됩니다.


  공직선거법에서 이와 같이 정하고 있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합리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위 공직선거법 제232조 제1항은 크게 후보사퇴 전(또는 후보등록 전)에 매수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제1호와, 후보사퇴 후(또는 후보등록포기 후)에 매수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제2호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만약 제1호만 있고 제2호는 없다면, 누구나 경쟁후보를 '주저앉힌' 후 대가는 사퇴 후에 제공함으로써 처벌을 피해갈 수 있게 되어 사실상 후보매수는 처벌이 불가능해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공직선거법은 후보사퇴 후의 대가 제공도 처벌하도록 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까지 읽으셨다면, 일단 곽노현 교육감에게 적용되는 법조의 내용과 그 법이 '억지스럽게'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은 수긍하실 것입니다. 참고로, 전교조 부대변인께서 쓰신 글은, 공직선거법 제232조 제1항 '제2호'가 아닌 '제1호'(후보 사퇴 전의 대가제공을 처벌하는 조항)이 적용되는 것으로 착각하여, 이를 전제로 "검찰이 박명기 후보의 사퇴 전에 대가 제공의 의사표시가 있었다는 진술을 받아내고자 억지 수사를 하고 있다"는 주장을 펴고 있는데, 안타깝지만 기본 전제(적용 법조)부터가 틀렸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진술이 있다면 검찰로서는 더욱 범죄사실의 입증이 쉽겠지만, 없더라도 입증이 안 되는 것이 아닙니다.




  2. '선의'로 주었다고 주장하면 과연 대가성이 부정되는가? - NO 


  곽노현 교육감은 (i) '후보자였던' 박명기 전 후보에게 (ii) 후보자를 사퇴한 데 대한 대가를 목적으로 (iii) 금전을 제공(서울시 교육청 자문위원이라는 '직'을 제공한 것도 혐의에 포함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일단 이 부분은 이 글에서는 논외로 합니다)한 행위에 대하여 공직선거법 제232조 제1항 제2호 위반으로 처벌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적지 않은 곽 교육감의 지지자 분들이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 (ii) 부분입니다. 곽노현 교육감은 박명기 전 후보가 "선거 때 생긴 부채로 말미암아 경제적으로 몹시 궁박한 상태이며, 자살마저 생각한다"는 말을 듣고 "선의에 입각하여" 2억 원을 제공했다고 주장하는데, 그렇다면 과연 '후보사퇴 대가목적'이 입증될 수 있느냐 하는 의문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런데, 법률가가 아니거나 법을 공부하지 않은 분들께는 이 '선의'라는 주장이 상당히 그럴듯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이러한 주장은 법을 공부하였거나 법에 관한 일을 업으로 하는 분들로서는 한 눈에 구성요건을 피하기 위한 변명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에 불과합니다. 이에 관해 다음의 판례(부산고등법원 2007. 5. 31. 선고 2007노123 판결)를 보겠습니다.


  판례는 2006. 5. 31.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밀양시의회 의원 후보로 출마하여 당선된 피고인이, 선거 과정에서 예비후보로 등록한 경쟁후보에게 '양보해달라, 선거비용을 보전해주겠다'는 취지의 말을 한 적이 있고, 경쟁후보가 사퇴하지 않고 끝까지 겨뤄 낙선한 뒤 그에게 1천만 원을 제공한 혐의로 기소된 사안에 관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건에서도 피고인은 항소이유에서 "피고인이 위 선거 이후 낙선한 이00에게 1,000만 원을 지급한 사실은 있으나, 이는 인근 주민들과 지인들의 권유로 선거결과와 상관없이 지역화합 차원에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이00을 도와주려는 순수한 마음에서 지급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즉, "선거로 인하여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대 후보를 순수한 마음에서 도와준 것"이라는 주장은(곽노현 교육감의 경우와 레퍼토리가 정확히 일치합니다),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벗기 위해 쓰이는 통상적인 변명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이에 대한 법원의 판단은 단호했습니다. 피고인은 공직선거법상 후보매수죄와 기부행위제한 위반이 인정되어1)  벌금 5백만원을 선고받았고, 이 항소심 판결은 대법원에서도 그대로 확정(대법원 2007. 9. 21. 선고 2007도4724 판결)되어2) 피고인은 의원직을 상실했습니다.


  다시 본래의 논점인 '후보사퇴 대가목적' 요건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공직선거법 제232조의 후보매수죄에 대해 '후보사퇴 대가목적'의 판단기준을 구체적으로 설시한 판례는 없지만, 법원은 대체로 ① 피고인 간의 관계 ② 금전의 액수 ③ 금전을 제공하게 된 경위 및 전달 방법 ④ 금전의 전달 시기 등을 종합하여 판단하게 될 것으로 보이며, 특히 당선된 후보자가 그를 지지하며 사퇴한 후보자에게 금전을 제공한 경우라면 후보사퇴 대가목적은 쉽게 인정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판단기준은 제 머릿속에서 아무렇게나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수뢰죄, 알선수재죄 등에서의 '대가관계'의 판례상 판단 기준으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다음의 판례들이 일응 참고가 될 수 있겠습니다.


  "공무원이 수수한 금품이 직무와 대가관계가 있는 부당한 이익으로서 뇌물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당해 공무원의 직무 내용, 직무와 이익제공자와의 관계, 쌍방간에 특수한 사적인 친분관계가 존재하는지 여부, 이익의 다과, 이익을 수수한 경위와 시기 등의 제반 사정을 참작하여 결정하여야 할 것이고, 뇌물죄가 직무집행의 공정과 이에 대한 사회의 신뢰를 그 보호법익으로 하고 있음에 비추어 볼 때, 그 성립을 위하여 반드시 직무에 관한 청탁이나 부정한 행위를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고, 공무원이 금원을 수수하는 것으로 인하여 사회일반으로부터 직무집행의 공정성을 의심받게 되는지의 여부도 하나의 판단 기준이 된다."(대법원 2006. 12. 22. 선고 2004도7356 판결 외 다수)


  "알선수재죄에서 알선과 금품 기타 이익 사이에 대가관계가 있는지 여부는 당해 알선의 내용, 알선자와 이익제공자 간에 특수한 사적인 친분관계가 존재하는지 여부, 이익의 다과, 이익을 수수한 경위와 시기 등의 제반 사정을 참작하여 결정하여야 하고, 알선과 금품 기타 이익 사이에 전체적·포괄적으로 대가관계가 있으면 족하다."(대법원 2002. 12. 24. 선고 2002도5296 판결 외 다수) )


  곽노현 교육감 사건의 경우,


  ① 곽노현 교육감과 박명기 전 후보가 평소에도 2억 원 안팎의 돈은 쉽게 주고 받는 사이였다고 볼 근거가 없으며, 오히려 당선된 후보자가 그를 지지하고 사퇴한 후보자에게 금전을 제공하였다는 점에서 후보사퇴 대가목적이 추단될 수 있고,


  ② 금전의 액수가 2억 원의 고액에 이를 뿐만 아니라(여기에 더하여 2억 원이 아닌 7억 원을 받기로 약속했고 제공된 2억 원은 그 중 일부에 불과하다는 박명기 전 후보의 진술이 있었다는 보도가 나왔는데,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후보사퇴 대가목적'은 너무나도 분명합니다),


  ③ 후보 사퇴와는 아무 관계 없이 정말 '선의로 도와주고자' 한 것이라면 제3자를 통해 은밀하게 제공할 이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제3자로 하여금 박명기 전 후보의 동생을 통하여 전달하도록 한 것을 보더라도 두 사람 모두 그 불법성을 인지하고 있었다고 보이고,


  ④ 이러한 사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금전의 제공 시점이 선거일로부터 8~9개월 후라는 점만을 들어 '후보사퇴 대가목적'이 없다고 한다면, 사실상 공직선거법의 후보매수죄는 사문화되어 후보매수가 만연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도 법원은 '후보사퇴 대가목적'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시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제가 곽노현 교육감 사건에서 '후보사퇴 대가목적'이 부정될 수 없고, 무죄가 될 확률이 지극히 희박하다고 보는 이유입니다. 일부 진보 성향 지지자분들의 경우, 법에 문외한인 까닭에 "경제적으로 어렵다고 하니 선의로 도와주었다"는 말을 애써 선해하려고 하시는데, 법이 금품수수를 금지하고 있는 각종의 행위에 있어 대가관계를 판단하는 기준은 돈을 준 당사자가 대가성을 부인하고 '선의'라고 주장한다고 해서 대가관계가 부정될만큼 그리 단순한 것이 아님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3. 공소시효가 완성되었는가? - NO


  그런가 하면, 이 글을 쓰는 동안 트위터에서는 또다른 황당한 법적 주장 하나가 전파되고 있었습니다. "선거범죄는 공소시효가 선거일로부터 6월이기 때문에 공소시효가 완성되었고, 공직선거법상 '선거일후에 행하여진 범죄'에 곽노현 교육감의 경우는 포함되지 않는다"는 주장이 그것입니다. (링크 : http://durl.me/fcv7g )




  한마디로 말해 참으로 법적으로 황당하기 이를데 없는 주장입니다. 미안하지만, 법에 관해 잘 모르시는 분들이 아무렇게나 법해석을 해서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것은 좀 지양해주셨으면 합니다. 이런 분들의 글이 진보적인 네티즌들을 잘못된 방향으로 호도하고 있습니다. 정말 안타깝습니다.




  공직선거법이 선거범죄의 공소시효에 관하여 정한 제268조를 보겠습니다.


  제268조(공소시효) ① 이 법에 규정한 죄의 공소시효는 당해 선거일후 6월(선거일후에 행하여진 범죄는 그 행위가 있는 날부터 6월)을 경과함으로써 완성한다. 다만, 범인이 도피한 때나 범인이 공범 또는 범죄의 증명에 필요한 참고인을 도피시킨 때에는 그 기간은 3년으로 한다. <개정 2004.3.12>





  위에서 보시는 것과 같이, "선거일후에 행하여진 범죄"는 공소시효가 "그 행위가 있는 날부터 6월"을 경과함으로써 완성하지, "선거일후 6월"이 지남으로써 완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현재 알려진 혐의사실은 곽노현 교육감이 2011년 2월부터 4월까지 수 차례로 나누어 금전을 제공했다는 것인데, 이와 같은 경우에는 포괄일죄가 되어 마지막으로 금전이 제공된 시점부터 공소시효가 기산되므로3) 공소시효는 2011년 10월까지가 될 것이고, 그렇다면 "공소시효 완성이 임박해서 지금 수사하는 것"이라는 검찰의 발표에 일리가 있습니다. 공소시효 완성이 임박해 있다면 속도를 내서 수사를 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이에 대해 앞서의 링크 글에서는 공직선거법상 "선거일후의 범죄"란 "당선인 사퇴유도죄"와 같은 것만을 말하는 것이고 "후보자 사퇴 후 뇌물교부죄라는 것은 없다"라고 쓰고 있는데, 글쓴이는 자신이 법률전문가라고 주장하지만 이 문장만 보아도 법률전문가가 전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후보를 사퇴한 자는 신분이 공무원도 아닌데 무슨 그런 죄를 만들 수 있겠습니까? 그것도 공직선거법에? 소가 웃을 주장입니다). 다시 한번 공직선거법 제232조 제1항 제2호를 봅시다.




 ① 다음 각호의 1에 해당하는 자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상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제1호 생략)

  2. 후보자가 되고자 하는 것을 중지하거나 후보자를 사퇴한데 대한 대가를 목적으로 후보자가 되고자 하였던 자나 후보자이었던 자에게  제230조제1항제1호에 규정된 행위를 한 자 또는 그 이익이나 직의 제공을 받거나 제공의 의사표시를 승낙한 자




  위 제2호에 의하여 처벌되는 행위는 "후보자를 사퇴한데 대한 대가를 목적으로 후보자이었던 자에게 금전 등을 제공한 행위"입니다. 그 시점이 선거일 전인지 후인지는 불문합니다(앞서 인용한 판례 참조). 처벌되는 행위가 '금전제공행위'이므로, 당연히 그 금전 제공이 선거일 후에 있었으면 그 제공 시점부터 6월이 공소시효입니다. 유언비어에 가까운 황당무계한 법해석은 제발 좀 지양했으면 합니다.




  4. 비전문가에 의한 자의적 판례 인용의 위험성


  곽노현 교육감 사건을 둘러싸고 전파된 법적 오해를 바로잡는 김에 하나만 더 지적하겠습니다. 앞서 전교조 부대변인께서 쓰신 블로그 글에서는 다음의 판례를 알려준 분이 있었다며 추가로 아래 판례를 제시하여, 곽 교육감이 처벌되지 않을 수 있는 가능성을 암시하고 있는데, 이 역시 안타깝지만 완전히 자의적인 판례 인용입니다.




  대법원 2007.1.12. 선고 2006도7906 판결【공직선거법위반】


  공직선거법 제230조 제1항 제1호 소정의 금품 기타 재산상 이익 등(이하 ‘금품 등’이라고 한다)의 제공의 의사를 표시하거나 그 제공을 약속하는 행위는 구두에 의하여 할 수도 있고 그 방식에 특별한 제한은 없는 것이지만, 그 약속 또는 의사표시가 사회통념상 쉽게 이를 철회하기 어려울 정도로 당사자의 진정한 의지가 담긴 것으로서 외부적·객관적으로 나타나는 정도에 이르러야만 비로소 이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지, 금품 등과 관련한 모든 행위가 이에 해당한다고 할 수는 없다 할 것이다(대법원 2006. 4. 27. 선고 2004도4987 판결 참조). 




  위 판결을 인용하신 분들은 "금품 등과 관련한 모든 행위가 (매수행위에) 해당한다고 할 수는 없다"는 문장에 주목하신 것으로 보이는데, 안타깝지만 위 판례는 곽노현 교육감 사건에 적용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사건, 어떤 이유에서 판례가 위와 같은 판시를 하게 되었는지를 보겠습니다.


  먼저, 인용된 2006도7906 판결은, 도의회의원 선거에 입후보한 피고인이 “처음 받는 봉급 어려운 이웃(사회복지시설)과 함께”라는 내용이 포함된 예비후보자 홍보물을 선거인들에게 발송한 사건에 관한 것입니다. 법원이 이에 대해 "피고인이 위 홍보물에 기재한 내용은 장차 도의회의원으로 당선되면 처음 받게 될 봉급을 사회복지시설 등 불우한 이웃을 위해 기부하겠다는 것으로서, 위 홍보물을 받는 선거인들이 그 혜택을 직접적으로 받는 지위에 있다고 할 수 없어 이로 인하여 선거인들을 매수했다고 평가할 수는 없다"고 판시한 것이 위 2006도7906 판결의 내용이고, 이는 곽노현 교육감 사건과는 전혀 다를 뿐만 아니라, 공직선거법 제232조의 후보매수죄에 관한 것이 아니라 선거인매수죄(공직선거법 제230조 제1항 제1호)에 관한 것입니다. 즉, "첫 월급을 기부하겠다"고 홍보물에 기재한 행위는 선거인매수죄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 판례의 취지입니다.


  또한, 인용된 판례의 참고 판례가 된 대법원 2006. 4. 27. 선고 2004도4987 판결을 보면, "금품 등과 관련된 모든 행위가 (매수행위에) 해당한다고는 할 수 없다"는 문장이 판례에 등장하게 된 이유를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2004도4987 판결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구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 방지법(현행 공직선거법에 해당 - 필자 주) 제230조 제1항 제4호 소정의 “금품 기타 이익의 제공의 의사를 표시하거나 그 제공을 약속”하는 행위는 구두에 의하여도 할 수 있고 그 방식에 제한은 없는 것이지만, 그 약속 또는 의사표시가 사회통념상 쉽게 이를 철회하기 어려울 정도로 당사자의 진정한 의지가 담긴 것으로서 외부적·객관적으로 나타나는 정도에는 이르러야 본조의 구성요건 해당성이 있다고 할 것이지, 위 조항에서 금지하고 있는 금품 기타 이익의 제공과 관련한 대화가 있었다고 하여, 단순한 의례적·사교적인 덕담이나 정담, 또는 상대방을 격려하기 위한 인사치레의 표현까지 모두 본조의 구성요건에 해당한다고 할 수는 없다."


  위 판결은, 제17대 국회의원선거에 출마 준비중이던 피고인 1에게 평소 잘 알고 있던 피고인 2, 3 등이 도와주겠다고 하자, 그들에게 함께 열심히 일하고 선거에서 좋은 결과가 있으면 향후에도 계속 국회의원 비서 또는 보좌관 등으로 같이 일해 보자는 취지의 대화를 한 번 나눈 사실이 인정될 뿐이었던 사건에 관한 것입니다. 그래서 위와 같은 판례 문언이 나오게 된 것이고, 이를 참고한 2006도7906 판결에서도 "그 약속 또는 의사표시가 사회통념상 쉽게 이를 철회하기 어려울 정도로 당사자의 진정한 의지가 담긴 것으로서 외부적·객관적으로 나타나는 정도에 이르러야만 비로소 이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지, 금품 등과 관련한 모든 행위가 이에 해당한다고 할 수는 없다"는 문장이 등장하게 된 것입니다. 곽노현 교육감의 경우는 단지 의사표시 수준에 그친 것이 아니라 현실의 금전 제공이 있었기 때문에, 인용된 판례들은 전혀 참고가 될 수 없는 것들입니다. 


  참고로, 위와 같은 사건의 내용은 판례 전문에 모두 나옵니다. 전문을 읽어보지 않고 거두절미하여 판례를 자의적으로 인용하면 이와 같이 엉뚱한 주장을 하게 됩니다. 비전문가에 의한 자의적인 판례 인용이 위험한 이유입니다.




  맺으며 ㅡ '제2, 제3의 곽노현 사건'을 예방하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종합하면, 곽노현 교육감은 유죄 판결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일부의 분들은 '무죄추정의 원칙도 모르느냐, 인권법학회도 한다는 사람이 그럴 수 있느냐'고도 하십니다. 형사절차와 무죄추정의 원칙의 중요성을 당연히 모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정치도의상 책임있는 자세가 요구되는 영역에서까지 무죄추정의 원칙을 원용해서 옹호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닙니다. 무엇보다도 곽노현 교육감 본인이 자신의 행위가 어떻게 판단될 일이고 지금 상황에서 어떠한 행동이 최선인지는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트위터를 통해 퍼지는, 법적 오류에 기반한 주장들을 바로잡으려 애쓰다 보니, 마치 제가 '곽노현 저격수'라고 된 것 같기도 합니다만, 저는 지난 지방선거 때 곽노현 후보에게 투표했고, 제가 몸담고 있는 인권법학회에서 학회장을 맡고 있던 올해 2월에도 곽노현 교육감을 초청하여 특별초청강연을 진행하고자 추진했던 적이 있습니다(응하지 않으셔서 무산되었습니다만). 그만큼 좋게 생각했던 분이기에 이런 상황에 처한 것이 안타깝습니다.


  그러나, '진보 교육감'을 지지했던, 그리고 '진보적 교육정책'을 지지하는 이들이 지금 할 일은, 법적으로도 도덕적으로도 변명의 여지가 없는 '한 사람'을 무리한 논리로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제2, 제3의 곽노현'을 예방할 수 있는 제도적 해결책이 입법될 수 있도록 목소리를 높이고 힘을 모으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두가 알다시피 선거는 돈이 듭니다. 서울시 교육감 선거와 같이 단위가 큰 선거에서는 유효투표의 15% 이상 득표했을 때 전액보전해주는 법정선거비용만 30억 원이 넘습니다. 하지만 '후보단일화'를 위해 중도 사퇴하면, 선거비용은 보전받을 방법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중도 사퇴후보에게 국고에서 선거비용을 보전해줄 근거를 법에 마련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유권자의 표로써 지지의사가 구체적으로 확인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런 까닭에, 앞으로의 선거에서 야권이 '야권 연대'를 위한 선거공학적 후보단일화를 반복할 경우, 제2, 제3의 곽노현-박명기는 얼마든지 나올 수 있습니다. 만약 교육감 선거나 교육위원 선거에서 유사한 사건이 반복될 경우, 한나라당과 보수 언론은 교육감ㆍ교육위원 직선제를 폐지하자고 할 것입니다. 이는 교육자치를 훼손하는 것이고, 무엇보다도 사학 비리에 대한 견제 수단이 약화된다는 점에서 매우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교육감과 교육위원의 직선제가 폐지되면, 사립학교의 비리를 내부 고발했다가 두번 거듭 해직당한 후 시민들에 의해 교육위원으로 선출되어 사학을 감시하는 역할을 하게 된 김형태 서울시 교육위원과 같은 사례는 더 이상 나올 수 없게 됩니다. 그러나 제2, 제3의 곽노현-박명기 사건이 반복되면, 교육감ㆍ교육위원 직선제 폐지 주장에 힘이 실리게 됩니다. 그래서 대안이 필요한 것입니다.


  해답은 '결선투표제 도입'에 있습니다. 결선투표제를 도입하면, 밀실에서의 선거공학적인 후보단일화가 아니라 유권자의 표에 의해 투명하게 후보단일화가 이루어지며, '여론조사 단일화'에 의한 폐단을 극복할 수 있고, 최종 당선자는 과반수의 득표에 의해 선출되므로 민주적 정당성이 제고되며, 무엇보다도 현행 제도와 정치 환경하에서는 '단일화의 압박'을 받는 후보도 1차 투표의 득표율에 따라 선거비용을 보전받을 수 있게 됩니다.


  물론 그 도입이 간단치는 않습니다. 현재의 야당은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정몽준 후보단일화를 비롯, 각종의 '후보단일화'로 이득을 보았기 때문에 결선투표제 도입에 적극적이지 않고, 한나라당은 결선투표제를 도입하면 선거에서 불리할 것을 우려하여 소극적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선투표제는 이제 더는 미룰 수 없는 과제입니다. 민주당만 소수 야당들과 선거 연합을 하는 것이 아니고, 한나라당도 미래희망연대(구 친박연대)나 자유선진당과 장차 선거 연합을 할 수도 있습니다. 3위 이하의 후보에게는 사퇴를 압박하고, 그 사퇴한 후보는 선거 빚에 시달리며, 당선된 후보는 불법적인 보상을 해야 하는 시스템을 언제까지 그대로 둘 것입니까.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보수에게도 진보에게도 '도덕성'은 똑같이 요구되어야 합니다. "저 쪽은 더 많이 더러우니 '우리 편'의 불법적이고 부도덕한 행위도 이해해줄 필요가 있다"는 식의 주장은 특정 정치 세력이나 정치인에게 종속된 사람들의 사고 방식 내지는 닳고 닳은 정치꾼들이나 할 법한 소리입니다. '진보'는 그렇게 말할 것이 아니라 항상 '그 다음'을 말하고 대안과 해결책을 만들어갈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죽은 곽노현 구하기'가 아니라 제2, 제3의 곽노현 사건을 예방하기 위한 선거법 개정입니다. '진보적 네티즌' 여러분의 현명한 자세를 부탁드립니다.


  1) 다만 위 항소심 판결(부산고등법원 2007노123)은 후보자는 일반 유권자가 아니므로 공직선거법 제256조 제4항 제11호, 제118조 제1호의 '선거일 후 답례금지 위반죄'를 적용한 1심 판결은 법 적용이 잘못되었다고 판시하고 본문과 같이 판결하였습니다.

  2) 대법원에서는 후보매수죄 적용 부분에 관한 피고인의 상고이유가 단순히 사실인정을 다투는 것으로서 적법한 상고이유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여, 구체적인 판단 기준에 관한 판례가 나오지는 않았습니다.

  3) 여러 개의 행위가 포괄적으로 1개의 구성요건에 해당하여 일죄를 구성하는 경우를 '포괄일죄'라고 합니다. 판례는 수뢰죄나 각종의 수재죄 등에 있어 여러 번으로 나누어 받은 행위에 대하여 "단일하고 계속된 범의 하에 일정 기간 반복하여 행하고 그 피해법익도 동일한 경우" 포괄일죄가 된다고 하고 있으므로(대법원 2000. 6. 27. 선고 2000도1155 판결, 대법원 2005. 11. 10. 선고 2004도42 판결 등 다수), 이 사건의 경우에도 법리적으로 포괄일죄가 된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포괄일죄의 공소시효는 최종 행위가 종료한 때부터 진행되므로(대법원 2009. 10. 29. 선고 2009도8069 판결 등 다수), 곽노현 교육감의 경우 공소시효가 완성된 것이 아니라, 알려진 사실대로라면 2011년 10월까지가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