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8월 29일 월요일

곽노현 교육감 사건의 올바른 법적 이해

  * 이 글에 대한 기자의 무단 인용을 금합니다. 부분적으로라도 인용을 원하는 기자분께서는 트위터 @Song_Younghoon 으로 멘션을 보내 승낙받은 후에 인용하시기 바랍니다.






  들어가며


  곽노현 서울특별시 교육감이 28일 지난해 6.2 지방선거 선거 당시 진보진영 후보단일화를 위해 사퇴한 박명기 후보(서울교대 교수)에게 2억원을 전달한 사실을 시인했습니다. 곽노현 교육감을 지지했던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는 안타까운 소식이지만, 곽노현 교육감은 교육행정의 수장으로서 학생들에게 조금이나마 덜 부끄럽기 위해서라도 책임지고 자진 사퇴하는 것이 도리입니다. 교육감 직을 유지한들 이미 정책추동력을 상실했기에 서울시 교육청의 행정에는 나쁜 영향을 주게 될 것이라는 점에서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트위터를 비롯한 온라인에서 보이는 일부 진보 성향 지지자 분들(아직까지는 '대다수'라고는 믿지 않습니다)의 생각은 사뭇 다른 것 같습니다. 그 분들은 '곽노현 교육감의 선의를 믿는다'고 말씀하시면서, '여당이 주민투표에 패배하자 검찰이 곽노현 교육감을 표적수사해 낙마시키고자 법적으로도 유죄가 되지 않는 것을 억지로 수사하고 있다'고 하십니다.


  여기서부터 법적으로 심각한 오류가 있는 주장들이 등장합니다. 예컨대, "선거비용 보전 차원에 불과하기 때문에 대가성이 없다"거나, "후보 사퇴 전에 금전을 제공하거나 제공할 의사표시를 해야만 처벌되므로" 검찰이 선거 전에 금전 제공 의사표시를 했다는 진술을 받아내기 위해 무리한 수사를 하고 있다는 주장들이 그것입니다. (그 중 대표적으로는 전교조 부대변인 '부정변증법'님께서 쓰신 "박명기 곽노현 사건(?)을 냉정히 보자"라는 제목의 글  이 있습니다. 이 글은 어제(28일) 밤부터 트위터에서 매우 빠른 속도로 전파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들은 법적으로는 모두 틀린 것입니다. 곽노현 교육감을 옹호하는 논리는  이와 같은 법적 오해에 근거하고 있고, 그러한 오류를 바로잡지 않음으로써 잘못된 결론에 이르는 것은 진보진영 전체를 위해서도 하등의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전교조 부대변인께서 쓰신 위 글을 중심으로 법적 쟁점에 관한 일각의 오해들을 바로잡고, 곽노현 교육감 사건을 법적으로 정확히 분석한 뒤, 덧붙여 향후 유사한 사건을 예방하기 위해 필요한 제도적 대안을 모색해보고자 합니다.






  1. 곽노현 교육감의 혐의 사실에 대한 적용 법조는?


  우선, 현재 곽노현 교육감에 대한 혐의 사실을 간략히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가. 2010. 6. 2. 전국동시지방선거 당시, 박명기 후보는 서울특별시 교육감 후보로 등록하였다가, 2010. 5. 19. 곽노현 후보의 지지를 위하여 사퇴하였다.


  나. 이후 곽노현 후보는 서울특별시 교육감으로 당선되었고, 2011. 2.부터 2011. 4.까지 수 회로 나누어 제3자를 통해 박명기 전 후보에게 2억 원의 금전을 제공하였다.


  안타까운 것은, 법률 비전문가가 쓴, 적용 법조마저 틀리게 언급한 글이 널리 퍼지면서 트위터에서는 마치 곽노현 교육감의 위와 같은 행위가 처벌되지 않는 것처럼 전파되고 있는 점입니다. 그러나 그 글은 가장 기본적인 전제인 적용 법조부터가 정확하지 못합니다.


  '후보자에 대한 매수 및 이해유도죄'(이하 '후보매수죄'라고 합니다)에 관하여 정하고 있는 공직선거법 제232조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① 다음 각호의 1에 해당하는 자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상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1. 후보자가 되지 아니하게 하거나 후보자가 된 것을 사퇴하게 할 목적으로 후보자가 되고자 하는 자나 후보자에게 제230조(매수 및 이해유도죄)제1항제1호에 규정된 행위를 한 자 또는 그 이익이나 직의 제공을 받거나 제공의 의사표시를 승낙한 자


  2. 후보자가 되고자 하는 것을 중지하거나 후보자를 사퇴한데 대한 대가를 목적으로 후보자가 되고자 하였던 자나 후보자이었던 자에게  제230조제1항제1호에 규정된 행위를 한 자 또는 그 이익이나 직의 제공을 받거나 제공의 의사표시를 승낙한 자


 ②제1항 각호의 1에 규정된 행위에 관하여 지시·권유·요구하거나 알선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상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제3항 생략)


 참고>  ①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개정 1997.1.13, 1997.11.14, 2000.2.16, 2004.3.12, 2009.2.12, 2010.1.25, 2011.7.28>  


  1. 투표를 하게 하거나 하지 아니하게 하거나 당선되거나 되게 하거나 되지 못하게 할 목적으로 (중략) 금전·물품·차마·향응 그 밖에 재산상의 이익이나 공사의 직을 제공하거나 그 제공의 의사를 표시하거나 그 제공을 약속한 자






  위에서 보는 바와 같이, 공직선거법 제232조 제1항 '제2호'에 의해, 후보 사퇴하기 이전 뿐만 아니라 후보 사퇴한 이후에도 후보자이었던 자에 대해 후보를 사퇴한데 대한 대가를 목적으로 금전을 제공하면 처벌됩니다. 또한 금전 뿐만 아니라 재산상의 이익, 공사(公私)의 직을 제공하는 것도 금지되며, 그 제공의 의사를 표시하거나 제공을 약속하는 것만으로도 처벌됩니다. 그리고 그 상대방 및 이를 지시, 권유, 요구, 알선한 자도 처벌됩니다.


  공직선거법에서 이와 같이 정하고 있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합리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위 공직선거법 제232조 제1항은 크게 후보사퇴 전(또는 후보등록 전)에 매수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제1호와, 후보사퇴 후(또는 후보등록포기 후)에 매수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제2호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만약 제1호만 있고 제2호는 없다면, 누구나 경쟁후보를 '주저앉힌' 후 대가는 사퇴 후에 제공함으로써 처벌을 피해갈 수 있게 되어 사실상 후보매수는 처벌이 불가능해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공직선거법은 후보사퇴 후의 대가 제공도 처벌하도록 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까지 읽으셨다면, 일단 곽노현 교육감에게 적용되는 법조의 내용과 그 법이 '억지스럽게'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은 수긍하실 것입니다. 참고로, 전교조 부대변인께서 쓰신 글은, 공직선거법 제232조 제1항 '제2호'가 아닌 '제1호'(후보 사퇴 전의 대가제공을 처벌하는 조항)이 적용되는 것으로 착각하여, 이를 전제로 "검찰이 박명기 후보의 사퇴 전에 대가 제공의 의사표시가 있었다는 진술을 받아내고자 억지 수사를 하고 있다"는 주장을 펴고 있는데, 안타깝지만 기본 전제(적용 법조)부터가 틀렸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진술이 있다면 검찰로서는 더욱 범죄사실의 입증이 쉽겠지만, 없더라도 입증이 안 되는 것이 아닙니다.




  2. '선의'로 주었다고 주장하면 과연 대가성이 부정되는가? - NO 


  곽노현 교육감은 (i) '후보자였던' 박명기 전 후보에게 (ii) 후보자를 사퇴한 데 대한 대가를 목적으로 (iii) 금전을 제공(서울시 교육청 자문위원이라는 '직'을 제공한 것도 혐의에 포함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일단 이 부분은 이 글에서는 논외로 합니다)한 행위에 대하여 공직선거법 제232조 제1항 제2호 위반으로 처벌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적지 않은 곽 교육감의 지지자 분들이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 (ii) 부분입니다. 곽노현 교육감은 박명기 전 후보가 "선거 때 생긴 부채로 말미암아 경제적으로 몹시 궁박한 상태이며, 자살마저 생각한다"는 말을 듣고 "선의에 입각하여" 2억 원을 제공했다고 주장하는데, 그렇다면 과연 '후보사퇴 대가목적'이 입증될 수 있느냐 하는 의문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런데, 법률가가 아니거나 법을 공부하지 않은 분들께는 이 '선의'라는 주장이 상당히 그럴듯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이러한 주장은 법을 공부하였거나 법에 관한 일을 업으로 하는 분들로서는 한 눈에 구성요건을 피하기 위한 변명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에 불과합니다. 이에 관해 다음의 판례(부산고등법원 2007. 5. 31. 선고 2007노123 판결)를 보겠습니다.


  판례는 2006. 5. 31.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밀양시의회 의원 후보로 출마하여 당선된 피고인이, 선거 과정에서 예비후보로 등록한 경쟁후보에게 '양보해달라, 선거비용을 보전해주겠다'는 취지의 말을 한 적이 있고, 경쟁후보가 사퇴하지 않고 끝까지 겨뤄 낙선한 뒤 그에게 1천만 원을 제공한 혐의로 기소된 사안에 관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건에서도 피고인은 항소이유에서 "피고인이 위 선거 이후 낙선한 이00에게 1,000만 원을 지급한 사실은 있으나, 이는 인근 주민들과 지인들의 권유로 선거결과와 상관없이 지역화합 차원에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이00을 도와주려는 순수한 마음에서 지급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즉, "선거로 인하여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대 후보를 순수한 마음에서 도와준 것"이라는 주장은(곽노현 교육감의 경우와 레퍼토리가 정확히 일치합니다),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벗기 위해 쓰이는 통상적인 변명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이에 대한 법원의 판단은 단호했습니다. 피고인은 공직선거법상 후보매수죄와 기부행위제한 위반이 인정되어1)  벌금 5백만원을 선고받았고, 이 항소심 판결은 대법원에서도 그대로 확정(대법원 2007. 9. 21. 선고 2007도4724 판결)되어2) 피고인은 의원직을 상실했습니다.


  다시 본래의 논점인 '후보사퇴 대가목적' 요건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공직선거법 제232조의 후보매수죄에 대해 '후보사퇴 대가목적'의 판단기준을 구체적으로 설시한 판례는 없지만, 법원은 대체로 ① 피고인 간의 관계 ② 금전의 액수 ③ 금전을 제공하게 된 경위 및 전달 방법 ④ 금전의 전달 시기 등을 종합하여 판단하게 될 것으로 보이며, 특히 당선된 후보자가 그를 지지하며 사퇴한 후보자에게 금전을 제공한 경우라면 후보사퇴 대가목적은 쉽게 인정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판단기준은 제 머릿속에서 아무렇게나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수뢰죄, 알선수재죄 등에서의 '대가관계'의 판례상 판단 기준으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다음의 판례들이 일응 참고가 될 수 있겠습니다.


  "공무원이 수수한 금품이 직무와 대가관계가 있는 부당한 이익으로서 뇌물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당해 공무원의 직무 내용, 직무와 이익제공자와의 관계, 쌍방간에 특수한 사적인 친분관계가 존재하는지 여부, 이익의 다과, 이익을 수수한 경위와 시기 등의 제반 사정을 참작하여 결정하여야 할 것이고, 뇌물죄가 직무집행의 공정과 이에 대한 사회의 신뢰를 그 보호법익으로 하고 있음에 비추어 볼 때, 그 성립을 위하여 반드시 직무에 관한 청탁이나 부정한 행위를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고, 공무원이 금원을 수수하는 것으로 인하여 사회일반으로부터 직무집행의 공정성을 의심받게 되는지의 여부도 하나의 판단 기준이 된다."(대법원 2006. 12. 22. 선고 2004도7356 판결 외 다수)


  "알선수재죄에서 알선과 금품 기타 이익 사이에 대가관계가 있는지 여부는 당해 알선의 내용, 알선자와 이익제공자 간에 특수한 사적인 친분관계가 존재하는지 여부, 이익의 다과, 이익을 수수한 경위와 시기 등의 제반 사정을 참작하여 결정하여야 하고, 알선과 금품 기타 이익 사이에 전체적·포괄적으로 대가관계가 있으면 족하다."(대법원 2002. 12. 24. 선고 2002도5296 판결 외 다수) )


  곽노현 교육감 사건의 경우,


  ① 곽노현 교육감과 박명기 전 후보가 평소에도 2억 원 안팎의 돈은 쉽게 주고 받는 사이였다고 볼 근거가 없으며, 오히려 당선된 후보자가 그를 지지하고 사퇴한 후보자에게 금전을 제공하였다는 점에서 후보사퇴 대가목적이 추단될 수 있고,


  ② 금전의 액수가 2억 원의 고액에 이를 뿐만 아니라(여기에 더하여 2억 원이 아닌 7억 원을 받기로 약속했고 제공된 2억 원은 그 중 일부에 불과하다는 박명기 전 후보의 진술이 있었다는 보도가 나왔는데,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후보사퇴 대가목적'은 너무나도 분명합니다),


  ③ 후보 사퇴와는 아무 관계 없이 정말 '선의로 도와주고자' 한 것이라면 제3자를 통해 은밀하게 제공할 이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제3자로 하여금 박명기 전 후보의 동생을 통하여 전달하도록 한 것을 보더라도 두 사람 모두 그 불법성을 인지하고 있었다고 보이고,


  ④ 이러한 사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금전의 제공 시점이 선거일로부터 8~9개월 후라는 점만을 들어 '후보사퇴 대가목적'이 없다고 한다면, 사실상 공직선거법의 후보매수죄는 사문화되어 후보매수가 만연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도 법원은 '후보사퇴 대가목적'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시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제가 곽노현 교육감 사건에서 '후보사퇴 대가목적'이 부정될 수 없고, 무죄가 될 확률이 지극히 희박하다고 보는 이유입니다. 일부 진보 성향 지지자분들의 경우, 법에 문외한인 까닭에 "경제적으로 어렵다고 하니 선의로 도와주었다"는 말을 애써 선해하려고 하시는데, 법이 금품수수를 금지하고 있는 각종의 행위에 있어 대가관계를 판단하는 기준은 돈을 준 당사자가 대가성을 부인하고 '선의'라고 주장한다고 해서 대가관계가 부정될만큼 그리 단순한 것이 아님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3. 공소시효가 완성되었는가? - NO


  그런가 하면, 이 글을 쓰는 동안 트위터에서는 또다른 황당한 법적 주장 하나가 전파되고 있었습니다. "선거범죄는 공소시효가 선거일로부터 6월이기 때문에 공소시효가 완성되었고, 공직선거법상 '선거일후에 행하여진 범죄'에 곽노현 교육감의 경우는 포함되지 않는다"는 주장이 그것입니다. (링크 : http://durl.me/fcv7g )




  한마디로 말해 참으로 법적으로 황당하기 이를데 없는 주장입니다. 미안하지만, 법에 관해 잘 모르시는 분들이 아무렇게나 법해석을 해서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것은 좀 지양해주셨으면 합니다. 이런 분들의 글이 진보적인 네티즌들을 잘못된 방향으로 호도하고 있습니다. 정말 안타깝습니다.




  공직선거법이 선거범죄의 공소시효에 관하여 정한 제268조를 보겠습니다.


  제268조(공소시효) ① 이 법에 규정한 죄의 공소시효는 당해 선거일후 6월(선거일후에 행하여진 범죄는 그 행위가 있는 날부터 6월)을 경과함으로써 완성한다. 다만, 범인이 도피한 때나 범인이 공범 또는 범죄의 증명에 필요한 참고인을 도피시킨 때에는 그 기간은 3년으로 한다. <개정 2004.3.12>





  위에서 보시는 것과 같이, "선거일후에 행하여진 범죄"는 공소시효가 "그 행위가 있는 날부터 6월"을 경과함으로써 완성하지, "선거일후 6월"이 지남으로써 완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현재 알려진 혐의사실은 곽노현 교육감이 2011년 2월부터 4월까지 수 차례로 나누어 금전을 제공했다는 것인데, 이와 같은 경우에는 포괄일죄가 되어 마지막으로 금전이 제공된 시점부터 공소시효가 기산되므로3) 공소시효는 2011년 10월까지가 될 것이고, 그렇다면 "공소시효 완성이 임박해서 지금 수사하는 것"이라는 검찰의 발표에 일리가 있습니다. 공소시효 완성이 임박해 있다면 속도를 내서 수사를 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이에 대해 앞서의 링크 글에서는 공직선거법상 "선거일후의 범죄"란 "당선인 사퇴유도죄"와 같은 것만을 말하는 것이고 "후보자 사퇴 후 뇌물교부죄라는 것은 없다"라고 쓰고 있는데, 글쓴이는 자신이 법률전문가라고 주장하지만 이 문장만 보아도 법률전문가가 전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후보를 사퇴한 자는 신분이 공무원도 아닌데 무슨 그런 죄를 만들 수 있겠습니까? 그것도 공직선거법에? 소가 웃을 주장입니다). 다시 한번 공직선거법 제232조 제1항 제2호를 봅시다.




 ① 다음 각호의 1에 해당하는 자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상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제1호 생략)

  2. 후보자가 되고자 하는 것을 중지하거나 후보자를 사퇴한데 대한 대가를 목적으로 후보자가 되고자 하였던 자나 후보자이었던 자에게  제230조제1항제1호에 규정된 행위를 한 자 또는 그 이익이나 직의 제공을 받거나 제공의 의사표시를 승낙한 자




  위 제2호에 의하여 처벌되는 행위는 "후보자를 사퇴한데 대한 대가를 목적으로 후보자이었던 자에게 금전 등을 제공한 행위"입니다. 그 시점이 선거일 전인지 후인지는 불문합니다(앞서 인용한 판례 참조). 처벌되는 행위가 '금전제공행위'이므로, 당연히 그 금전 제공이 선거일 후에 있었으면 그 제공 시점부터 6월이 공소시효입니다. 유언비어에 가까운 황당무계한 법해석은 제발 좀 지양했으면 합니다.




  4. 비전문가에 의한 자의적 판례 인용의 위험성


  곽노현 교육감 사건을 둘러싸고 전파된 법적 오해를 바로잡는 김에 하나만 더 지적하겠습니다. 앞서 전교조 부대변인께서 쓰신 블로그 글에서는 다음의 판례를 알려준 분이 있었다며 추가로 아래 판례를 제시하여, 곽 교육감이 처벌되지 않을 수 있는 가능성을 암시하고 있는데, 이 역시 안타깝지만 완전히 자의적인 판례 인용입니다.




  대법원 2007.1.12. 선고 2006도7906 판결【공직선거법위반】


  공직선거법 제230조 제1항 제1호 소정의 금품 기타 재산상 이익 등(이하 ‘금품 등’이라고 한다)의 제공의 의사를 표시하거나 그 제공을 약속하는 행위는 구두에 의하여 할 수도 있고 그 방식에 특별한 제한은 없는 것이지만, 그 약속 또는 의사표시가 사회통념상 쉽게 이를 철회하기 어려울 정도로 당사자의 진정한 의지가 담긴 것으로서 외부적·객관적으로 나타나는 정도에 이르러야만 비로소 이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지, 금품 등과 관련한 모든 행위가 이에 해당한다고 할 수는 없다 할 것이다(대법원 2006. 4. 27. 선고 2004도4987 판결 참조). 




  위 판결을 인용하신 분들은 "금품 등과 관련한 모든 행위가 (매수행위에) 해당한다고 할 수는 없다"는 문장에 주목하신 것으로 보이는데, 안타깝지만 위 판례는 곽노현 교육감 사건에 적용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사건, 어떤 이유에서 판례가 위와 같은 판시를 하게 되었는지를 보겠습니다.


  먼저, 인용된 2006도7906 판결은, 도의회의원 선거에 입후보한 피고인이 “처음 받는 봉급 어려운 이웃(사회복지시설)과 함께”라는 내용이 포함된 예비후보자 홍보물을 선거인들에게 발송한 사건에 관한 것입니다. 법원이 이에 대해 "피고인이 위 홍보물에 기재한 내용은 장차 도의회의원으로 당선되면 처음 받게 될 봉급을 사회복지시설 등 불우한 이웃을 위해 기부하겠다는 것으로서, 위 홍보물을 받는 선거인들이 그 혜택을 직접적으로 받는 지위에 있다고 할 수 없어 이로 인하여 선거인들을 매수했다고 평가할 수는 없다"고 판시한 것이 위 2006도7906 판결의 내용이고, 이는 곽노현 교육감 사건과는 전혀 다를 뿐만 아니라, 공직선거법 제232조의 후보매수죄에 관한 것이 아니라 선거인매수죄(공직선거법 제230조 제1항 제1호)에 관한 것입니다. 즉, "첫 월급을 기부하겠다"고 홍보물에 기재한 행위는 선거인매수죄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 판례의 취지입니다.


  또한, 인용된 판례의 참고 판례가 된 대법원 2006. 4. 27. 선고 2004도4987 판결을 보면, "금품 등과 관련된 모든 행위가 (매수행위에) 해당한다고는 할 수 없다"는 문장이 판례에 등장하게 된 이유를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2004도4987 판결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구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 방지법(현행 공직선거법에 해당 - 필자 주) 제230조 제1항 제4호 소정의 “금품 기타 이익의 제공의 의사를 표시하거나 그 제공을 약속”하는 행위는 구두에 의하여도 할 수 있고 그 방식에 제한은 없는 것이지만, 그 약속 또는 의사표시가 사회통념상 쉽게 이를 철회하기 어려울 정도로 당사자의 진정한 의지가 담긴 것으로서 외부적·객관적으로 나타나는 정도에는 이르러야 본조의 구성요건 해당성이 있다고 할 것이지, 위 조항에서 금지하고 있는 금품 기타 이익의 제공과 관련한 대화가 있었다고 하여, 단순한 의례적·사교적인 덕담이나 정담, 또는 상대방을 격려하기 위한 인사치레의 표현까지 모두 본조의 구성요건에 해당한다고 할 수는 없다."


  위 판결은, 제17대 국회의원선거에 출마 준비중이던 피고인 1에게 평소 잘 알고 있던 피고인 2, 3 등이 도와주겠다고 하자, 그들에게 함께 열심히 일하고 선거에서 좋은 결과가 있으면 향후에도 계속 국회의원 비서 또는 보좌관 등으로 같이 일해 보자는 취지의 대화를 한 번 나눈 사실이 인정될 뿐이었던 사건에 관한 것입니다. 그래서 위와 같은 판례 문언이 나오게 된 것이고, 이를 참고한 2006도7906 판결에서도 "그 약속 또는 의사표시가 사회통념상 쉽게 이를 철회하기 어려울 정도로 당사자의 진정한 의지가 담긴 것으로서 외부적·객관적으로 나타나는 정도에 이르러야만 비로소 이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지, 금품 등과 관련한 모든 행위가 이에 해당한다고 할 수는 없다"는 문장이 등장하게 된 것입니다. 곽노현 교육감의 경우는 단지 의사표시 수준에 그친 것이 아니라 현실의 금전 제공이 있었기 때문에, 인용된 판례들은 전혀 참고가 될 수 없는 것들입니다. 


  참고로, 위와 같은 사건의 내용은 판례 전문에 모두 나옵니다. 전문을 읽어보지 않고 거두절미하여 판례를 자의적으로 인용하면 이와 같이 엉뚱한 주장을 하게 됩니다. 비전문가에 의한 자의적인 판례 인용이 위험한 이유입니다.




  맺으며 ㅡ '제2, 제3의 곽노현 사건'을 예방하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종합하면, 곽노현 교육감은 유죄 판결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일부의 분들은 '무죄추정의 원칙도 모르느냐, 인권법학회도 한다는 사람이 그럴 수 있느냐'고도 하십니다. 형사절차와 무죄추정의 원칙의 중요성을 당연히 모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정치도의상 책임있는 자세가 요구되는 영역에서까지 무죄추정의 원칙을 원용해서 옹호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닙니다. 무엇보다도 곽노현 교육감 본인이 자신의 행위가 어떻게 판단될 일이고 지금 상황에서 어떠한 행동이 최선인지는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트위터를 통해 퍼지는, 법적 오류에 기반한 주장들을 바로잡으려 애쓰다 보니, 마치 제가 '곽노현 저격수'라고 된 것 같기도 합니다만, 저는 지난 지방선거 때 곽노현 후보에게 투표했고, 제가 몸담고 있는 인권법학회에서 학회장을 맡고 있던 올해 2월에도 곽노현 교육감을 초청하여 특별초청강연을 진행하고자 추진했던 적이 있습니다(응하지 않으셔서 무산되었습니다만). 그만큼 좋게 생각했던 분이기에 이런 상황에 처한 것이 안타깝습니다.


  그러나, '진보 교육감'을 지지했던, 그리고 '진보적 교육정책'을 지지하는 이들이 지금 할 일은, 법적으로도 도덕적으로도 변명의 여지가 없는 '한 사람'을 무리한 논리로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제2, 제3의 곽노현'을 예방할 수 있는 제도적 해결책이 입법될 수 있도록 목소리를 높이고 힘을 모으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두가 알다시피 선거는 돈이 듭니다. 서울시 교육감 선거와 같이 단위가 큰 선거에서는 유효투표의 15% 이상 득표했을 때 전액보전해주는 법정선거비용만 30억 원이 넘습니다. 하지만 '후보단일화'를 위해 중도 사퇴하면, 선거비용은 보전받을 방법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중도 사퇴후보에게 국고에서 선거비용을 보전해줄 근거를 법에 마련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유권자의 표로써 지지의사가 구체적으로 확인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런 까닭에, 앞으로의 선거에서 야권이 '야권 연대'를 위한 선거공학적 후보단일화를 반복할 경우, 제2, 제3의 곽노현-박명기는 얼마든지 나올 수 있습니다. 만약 교육감 선거나 교육위원 선거에서 유사한 사건이 반복될 경우, 한나라당과 보수 언론은 교육감ㆍ교육위원 직선제를 폐지하자고 할 것입니다. 이는 교육자치를 훼손하는 것이고, 무엇보다도 사학 비리에 대한 견제 수단이 약화된다는 점에서 매우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교육감과 교육위원의 직선제가 폐지되면, 사립학교의 비리를 내부 고발했다가 두번 거듭 해직당한 후 시민들에 의해 교육위원으로 선출되어 사학을 감시하는 역할을 하게 된 김형태 서울시 교육위원과 같은 사례는 더 이상 나올 수 없게 됩니다. 그러나 제2, 제3의 곽노현-박명기 사건이 반복되면, 교육감ㆍ교육위원 직선제 폐지 주장에 힘이 실리게 됩니다. 그래서 대안이 필요한 것입니다.


  해답은 '결선투표제 도입'에 있습니다. 결선투표제를 도입하면, 밀실에서의 선거공학적인 후보단일화가 아니라 유권자의 표에 의해 투명하게 후보단일화가 이루어지며, '여론조사 단일화'에 의한 폐단을 극복할 수 있고, 최종 당선자는 과반수의 득표에 의해 선출되므로 민주적 정당성이 제고되며, 무엇보다도 현행 제도와 정치 환경하에서는 '단일화의 압박'을 받는 후보도 1차 투표의 득표율에 따라 선거비용을 보전받을 수 있게 됩니다.


  물론 그 도입이 간단치는 않습니다. 현재의 야당은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정몽준 후보단일화를 비롯, 각종의 '후보단일화'로 이득을 보았기 때문에 결선투표제 도입에 적극적이지 않고, 한나라당은 결선투표제를 도입하면 선거에서 불리할 것을 우려하여 소극적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선투표제는 이제 더는 미룰 수 없는 과제입니다. 민주당만 소수 야당들과 선거 연합을 하는 것이 아니고, 한나라당도 미래희망연대(구 친박연대)나 자유선진당과 장차 선거 연합을 할 수도 있습니다. 3위 이하의 후보에게는 사퇴를 압박하고, 그 사퇴한 후보는 선거 빚에 시달리며, 당선된 후보는 불법적인 보상을 해야 하는 시스템을 언제까지 그대로 둘 것입니까.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보수에게도 진보에게도 '도덕성'은 똑같이 요구되어야 합니다. "저 쪽은 더 많이 더러우니 '우리 편'의 불법적이고 부도덕한 행위도 이해해줄 필요가 있다"는 식의 주장은 특정 정치 세력이나 정치인에게 종속된 사람들의 사고 방식 내지는 닳고 닳은 정치꾼들이나 할 법한 소리입니다. '진보'는 그렇게 말할 것이 아니라 항상 '그 다음'을 말하고 대안과 해결책을 만들어갈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죽은 곽노현 구하기'가 아니라 제2, 제3의 곽노현 사건을 예방하기 위한 선거법 개정입니다. '진보적 네티즌' 여러분의 현명한 자세를 부탁드립니다.


  1) 다만 위 항소심 판결(부산고등법원 2007노123)은 후보자는 일반 유권자가 아니므로 공직선거법 제256조 제4항 제11호, 제118조 제1호의 '선거일 후 답례금지 위반죄'를 적용한 1심 판결은 법 적용이 잘못되었다고 판시하고 본문과 같이 판결하였습니다.

  2) 대법원에서는 후보매수죄 적용 부분에 관한 피고인의 상고이유가 단순히 사실인정을 다투는 것으로서 적법한 상고이유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여, 구체적인 판단 기준에 관한 판례가 나오지는 않았습니다.

  3) 여러 개의 행위가 포괄적으로 1개의 구성요건에 해당하여 일죄를 구성하는 경우를 '포괄일죄'라고 합니다. 판례는 수뢰죄나 각종의 수재죄 등에 있어 여러 번으로 나누어 받은 행위에 대하여 "단일하고 계속된 범의 하에 일정 기간 반복하여 행하고 그 피해법익도 동일한 경우" 포괄일죄가 된다고 하고 있으므로(대법원 2000. 6. 27. 선고 2000도1155 판결, 대법원 2005. 11. 10. 선고 2004도42 판결 등 다수), 이 사건의 경우에도 법리적으로 포괄일죄가 된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포괄일죄의 공소시효는 최종 행위가 종료한 때부터 진행되므로(대법원 2009. 10. 29. 선고 2009도8069 판결 등 다수), 곽노현 교육감의 경우 공소시효가 완성된 것이 아니라, 알려진 사실대로라면 2011년 10월까지가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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